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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 ‘시인의 마을’에 사람들 북적이네

입력 | 2002-06-20 15:42:00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우리교육)가 각종 집계에서 한 달째 1위를 고수하고 있다. TV 프로그램 ‘!(느낌표)’의 효과라고 하지만, 오랜만에 시와 관련한 책(물론 시집은 아님)이 판매 1위라는 소식이 나쁘지 않다. ‘시인을 찾아서’는 신경림씨가 우리 현대의 대표시인 22명의 시와 시세계를 소개하기 위해 쓴 산문집이다. 3년 동안 시인의 고향과 창작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시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육성까지 채록해 담아냈으니 정확히 말하면 기행문에 평전을 섞어놓은 형식이다.

1998년 ‘우리교육’이 이 책을 펴낼 때의 의도는 분명했다. 시를 재미있게 읽고 싶어하는 사람, 학교에서 시를 가르치는 교사, 그리고 시를 배우는 학생들을 위한 안내서, 즉 교육적 목적이 강했다. 그래서 정지용 조지훈 김영랑 윤동주 유치환 박목월 신동엽 김수영 천상병 등 현대시사(史)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들을 망라했다. 교과서에 실렸던 시 외에는 시를 접해본 적이 없다는 사람도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를 통해 시세계에 다가갈 용기가 생길 것이라 믿는다.

일단 시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면 본격적으로 그 맛을 음미해야 한다. 이에 적당한 책이 ‘김춘수 사색사화집’(현대문학)과 신경림씨가 엮은 ‘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창작과비평)이다. 올해 여든에 접어든 김춘수 시인은 한국 현대시 100년사에서 고르고 고른 38명의 시인, 48편의 시를 자신의 ‘사색사화집’에 수록했다. 선정 방식은 나름대로 네 가지 범주-전통서정시, 피지컬한 시, 메시지가 강한 시, 실험성이 강한 시-를 정하고 이 기준에 맞는 시를 추려낸 것. 여기에 노시인의 매서운 비평이 ‘사색사화집’의 무게를 더한다.

‘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는 2000년 9월 창비시선 200호 발간을 기념해 88명의 현대 유명 시인의 대표시를 뽑아 엮은 것이다. 신경림씨는 창비시선 1호 ‘농무’의 저자이기도 하다. 어떤 해설이나 비평도 덧붙이지 않고 시만 수록한 ‘앤솔로지’ 형태이나 창비 출신이 아닌 시인들의 작품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70년대 이후 한국 현대시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다.

필명을 날린 시인들의 작품만이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투박하지만 진솔한 언어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경우도 있다. 1978년 이오덕 선생이 농촌 아이들의 시를 모아 펴냈던 ‘일하는 아이들’은 이미 아동문학의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이 책의 ‘고침판’(이오덕 선생의 표현이다)이 보리출판사에서 나왔다. 1950~70년대 농촌의 삶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점이나, 사투리를 살려 한 가지 말이 곳에 따라 다르게 쓰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도 등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앞의 책들과 나란히 꽂아두어도 손색이 없다.

2002년 여름 시 계간지 ‘시작’(詩作)을 창간하면서 맹문재 편집주간(시인)이 마지막 쪽에 깨알 같은 글씨로 쓴 후기가 퍽 마음에 든다. “(시작은) 무엇보다도 좋은 시와 시인들을 알리고 지지한다.” 남들이 무모하다고 하는 시 전문지를 창간하면서 이보다 더 좋은 원칙이 어디 있으랴. 월드컵의 함성 뒤에 시 읽는 소리를 기대한다.

주간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