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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속의 에로티시즘]섹스 앞에선 만인이 평등하다

입력 | 2002-06-20 16:46:00

이들은 뭘 하고 있는 걸까?사색에 잠겨 있는 걸까, 아니면 몽환에?


“남자가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속도가 빠르고 여자는 느리고 완만하다. 놀랍게도 많은 여성들이 오르가슴을 느껴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잡지에 등장하는 가십성 기사를 통해 알고 있는 오르가슴에 대한 통념이다. 그러나 그 은밀한 쾌감을 어떻게 일반화할 수 있을 것인가? ‘성행위 절정기에서의 쾌감’이란 짧은 정의를 가진 오르가슴은 사람마다 경험의 강도가 다른 천차만별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궁극적으로 오르가슴을 경험하기 위해 섹스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1948년의 킨제이 보고서는 감추려 했던 성생활의 속살을 드러냄으로써 더 이상 성은 숨기거나 죄악시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즐기고 자랑스러워해야 할 원초적 본능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는 데 불을 당겼다. 문화사가 프리샤우어가 밝혔듯이 남성은 여성에게 수동적인 성행위 이상의 것을, 여성은 남성에게 신속한 사정을 원하는 ‘상하운동’ 이상의 성행위를 요구하게 되었다. 기교를 부림으로써 고조되는 쾌락이 없는 성적 결합은 품위 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영국에서는 ‘동물의 교미’, 미국에선 ‘더티 비즈니스’라 불렀다 한다.

엑스터시와 같은 환각제 복용 후 섹스를 즐기는 일탈 행위도 결국은 오르가슴의 쾌감을 배가시키기 위한 것이다. 각종 섹스숍에서 기이한 성 보조용품을 파는 것 역시 오르가슴에 대한 강박의 결과이다. 이번에 살펴볼 광고는 런던의 사치&사치(Saatchi & Saatchi)에서 제작한 에로틱숍 ‘코코드메르(Co Co de Mer)’ 광고다. 그림엔 반쯤 눈을 뜨고 입을 벌린 채 절정에 도달한 듯한 흑인 여성의 얼굴과 역시 환희의 순간을 지속해 보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백인 남자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있다.

전 세계에서 거의 매순간 벌어지고 있는 일상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일상의 주인공들, 즉 결코 멋져 보이지 않는 아무개를 등장시켰다는 데서 이 광고는 특별해 보인다. 흔히 이런 유의 광고에는 포르노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남녀 모델이 등장하는 것이 상례다. 과장된 얼굴 표정과 괴이한 신음 소리, 거대하고 말끔하게 다듬어진 성기의 모습을 통해 마치 누구나 그런 황홀경을 경험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 주는 것이 포르노의 철칙 아니던가. 우리는 섹스의 실체를 알기도 전에 과잉 이미지가 넘쳐 흐르는 섹스 시뮬레이션 게임에 압도되어 왔다.

이 광고는 그러한 스테레오형 에로 광고의 틀을 반전시켰다. 누구나 섹스를 즐긴다. 누구나 오르가슴을 원한다. 먹고 사는 수준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대통령도 영화배우도 우리 집 앞 슈퍼마켓의 김씨 아저씨도 섹스 앞에서는 평등하다. 누구나 섹스 앞에서는 옷을 벗어야 하고, 오르가슴이라는 원초적인 욕구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섹스라는 만민평등의 오락에서는 바로 당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최고의 절정을 맛보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이 광고는 별로 예쁘지 않은 비주얼 한 장에 담아 놓았다. 예쁘지 않기에 더 공감이 가고 의외성도 크다.

광적으로 섹스에 탐닉하는 사람들을 보면 혀를 차며 변태 취급을 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말해 보자. 그 행위가 맛있는 음식점만 골라 다니며 식욕이란 욕망을 적극적으로 해소하려는 식도락가의 경우와 큰 차이가 있는가? 교수형에 처해진 사람은 죽음으로 넘어가는 순간 사정한다고 한다. 죽음이라는 실존의 문제에 직면한 순간 오르가슴이라는 원초적 욕망이 해소되는 인간이라는 몸뚱아리의 생물학적 아이러니! 이성이 욕망을 잠글 수 있을까?

김홍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