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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換위험 막을수 있다

입력 | 2002-06-20 17:31:00



대우조선해양(옛 대우조선)은 지난해 9월 일본 해운회사인 MOL사로부터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한 척을 수주했다. 18일에는 ‘건조를 시작하는 시점’에 받기로 한 중도금 1500만달러가 입금됐다.

계약 당시의 환율은 1300원대였지만 최근 원화강세(원화 환율 하락)에 따라 환율은 1200원대로 떨어진 상태. 그러나 이 회사 외환업무팀은 이런 환위험을 피하기 위해 수주 직후 ‘2002년 6월18일에 1500만달러를 1305원에 판다’는 선물환 계약을 해 놓았다. 덕분에 대우조선해양은 10억여원의 환차손을 피할 수 있었다.

환율이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많은 기업들이 한숨을 쉬고 있지만 대우조선해양처럼 위험에 미리미리 대비해 ‘환율을 이기는 기업들’도 많다. 삼보컴퓨터, 미래와 사람, 포스코, 삼성중공업, 현대자동차 등이 대표적인 회사들이다.

▽왜 환위험 관리인가〓한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환위험 관리에 나선 것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사상 최대의 환율 변동성 때문에 정상적인 경영에 위협을 받았던 쓰라린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구제금융 신청을 전후로 800원대의 환율이 2000원까지 뛰어올랐고 연말결산에 나타난 97년도 삼보컴퓨터의 환차손은 매출액의 6%인 443억원이었다.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이 회사는 99년 ‘TGFO(TriGem Financing Operation)’라는 조직을 신설해 외환 관리 시스템을 운영해 왔다.

외화 자산(외상수출대금 등)보다 부채(수입물품대금 등)가 많은 이 회사는 2000년 10월∼2001년 3월 환율이 1118원에서 1365원까지 약 22% 올라 환차손이 우려됐지만 TGFO가 미리 선물환 헤지(위험회피) 거래를 해 놓아 270억원만큼 손실을 피했다.

의류 등을 미국에 수출하는 미래와 사람은 97년 환율이 오르자 매출액의 14.87%인 94억원의 환차익을 보았다. 그러나 다음해에는 환율이 내려 매출액의 2.8%인 38억원의 환차손이 나타나자 99년부터 환위험 관리를 시작했다. 이후 이 회사의 환차손익은 매출액의 0.1%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6월 전사적인 리스크 관리 체제를 도입하면서 국제금융팀 운영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환율이 오를 때에는 환 헤지를 통해 80억원의 손해를 막았다.

▽어떻게 관리하나〓구체적으로는 대내적 관리기법과 대외적 관리기법이 있다.

대내적 기법은 회사 자체적으로 외화자금의 수입과 지출을 일치시키거나(매칭) 결제일을 조정해(리딩 레깅) 환 리스크를 피하는 방법. 대외적 기법은 금융시장에서 헤지거래(선물환 옵션 스와프 등)를 하는 것. 먼저 대내적 기법을 활용하고 추가조치가 필요할 경우 대외적 기법을 쓰는 경우가 많다.

‘포지션’의 개념도 중요하다. 외화 자산과 외화 부채의 비율이 같은 기업은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이 없다. 외화 자산이 외화 부채보다 많은 회사(대우조선해양, 미래와 사람)는 요즘처럼 환율이 내리면 손해를 본다. 외화 부채가 외화 자산보다 많은 회사(포스코, 삼보컴퓨터)는 반대로 지난해 봄처럼 환율이 오르면 손해다. 첫번째를 플랫포지션, 두번째를 롱포지션, 세번째를 쇼트포지션이라 부른다.

회사가 어느 포지션에 있는지에 관계 없이 환 리스크 관리의 목적은 같다. 박한수 삼보컴퓨터 금융팀장은 “환위험 관리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환차손과 환차익을 ‘O’에 수렴시켜 환율변동으로 인한 경영 위기를 예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안욱현 과장은 “주식투자와는 달리 환위험 관리는 환차손을 볼 확률을 피하는 대신 환차익을 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일부 기업들은 기업 입장에서 불리한 환율을 기준으로 해 사업계획을 수립, 경영의 안정성을 꾀하기도 한다.

▽CEO의 각성과 지원이 중요〓금융감독원이 지난해 6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28개 대기업의 66.4%와 196개 중소기업의 37.8%가 환위험을 관리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512개 12월 결산 상장법인의 2001년 환차손은 1조6677억원으로 2000년보다 2조1411억원이나 줄었다. 그만큼 많은 기업들이 환 관리를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직 많은 중소기업과 일부 대기업들은 환위험에 대해 ‘천수답’식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 환율이 내려 웃고 있는 일부 대기업들은 지난해 봄 환율이 오르자 “살려 달라”며 아우성쳤다.

노영길 포스코 국제금융팀장은 “그 무엇보다도 최고경영자(CEO)가 환위험 관리의 필요성을 실무자들과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헤지는 보험 가입과 같은 것으로 비용이 들기 마련인데 아직은 헤지상품이 일반화되지 않아 헤지 비용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박동순 금감원 국제업무팀장은 “기업들이 쉽게 환헤지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금융상품이 개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