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을 앞둔 고건 서울시장 - 이종승기자
《‘행정의 달인’으로 불리는 고건(高建) 서울시장이 이달 말 퇴임한다. 관선(2년)과 민선 서울시장(4년)을 다 지낸 유일한 인물인 그는 끊임없이 잠재적인 대권 후보로 거론돼 향후 행보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그는 일단 이번 대선에 후보로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퇴임 후 지역감정 해소와 부정부패 추방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차기 서울시장이 확정된 이후에도 “내 임기는 6월 말까지”라며 여전히 시정에 전념하고 있는 그를 20일 시장실에서 만났다.》
-이제 정말 퇴임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상황이다. 40여년의 공직생활과 6년간의 서울시장 생활을 마감하는 소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아직 열흘이나 남았다. 아무튼 ‘3수’까지 가지 않고 ‘재수’로 졸업해 다행이다. 그간 서울시민들이 잘 협조해주셔서 보람있는 일을 많이 했다.”
-가장 내세우고 싶은 업적은….
“2기 지하철을 완성한 점이다. 재미 교포들도 ‘다른 건 몰라도 지하철망은 뉴욕보다 낫다’고 말한다. 또 4년간 대형 사고가 하나도 없었다. 운도 좋았고 과학적인 상시점검 시스템을 확립한 것도 주효했다. 또 서울시가 더 이상 ‘복마전’이란 말을 듣지 않게 된 것도 큰 보람이다. 민원처리 온라인 공개시스템은 유엔이 앞장서서 보급할 정도로 부패추방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월드컵 준비도 잘 해냈다고 나름대로 자부한다.”
-여러 정권에서 많은 공직을 거쳤으면서도 별다른 오점이나 스캔들 없이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
“스스로 수칙을 정하고 지켜야 할 것은 지켰다. 첫째는 청렴이다. 1961년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할 때 아버님(전북대 총장과 국회의원 등을 지낸 고형곤씨)이 야당이어서 불리한 형편이었다. 그러니 청렴은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둘째는 ‘지성감민(至誠感民)이다. 즉 지극한 정성이면 국민이 감동할 것이라는 자세로 임했다. 셋째는 날로 바뀌는 환경에 맞춰 스스로를 늘 새롭게 했다.”
-일부에서는 지나치게 ‘안전운행’ 위주로 일해 흠집날 일이나 책임질 결정은 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는데….
“적어도 정권에 충성한 일은 없다. 임명직 시장 때 수서특혜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청와대에서 한보그룹에 특혜를 주라고 압력을 넣었으나 끝까지 반대했다. ‘왜 혼자 손에 흙을 묻히지 않으려 하느냐’는 질문을 하는데 ‘그럼 부정을 저지르란 얘기냐’고 되물으면 대개 대답을 못했다. 반면 시장 재임 중 지하철 5∼8호선을 겁도 없이 한꺼번에 착수했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일을 즐기는 편이고 새벽마다 대중탕에 가 요가와 함께 목욕을 한다. 또 주말이면 테니스를 친다. 골프는 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후보 출마 요청을 여러 차례 거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재출마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1998년 서울시장 입후보 당시부터 해온 얘기다. 내가 관선 때 벌여놓은 일들, 즉 2기 지하철 문제나 서울시의 ‘복마전’ 오명을 씻기 위해 민선시장으로 나섰고 이제 그 일들을 대충 마무리했다. 또 국정감사 때나 언론과의 인터뷰 등에서도 ‘재출마 안한다’고 답변한 것이 수십번은 된다.”
-끊임없이 대권후보로 거론돼왔는데 만일 특정 정당에서 대선 후보로 적극 추대할 경우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그때 물어보라(웃음). 그런 일은 없을 거다.”
-그러나 국민적 요구가 있다면 나라와 사회를 위해 ‘평화로운 노후’를 희생할 각오는 있는가.
“나라와 사회를 위해 필요한 일이 있다면 당연히 봉사해야 할 거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지역감정 해소와 부정부패 추방을 위해 시민단체나 연구단체 등에 참여해 기여하고 싶다. 특히 지역감정은 현정부에 들어와 더 심해졌다. 원인과 과정은 차치하고 우리 사회가 특단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임기가 끝난 뒤 계획은….
“명지대 석좌교수로서 ‘공공행정’에 관해 한 학기에 몇 번 특강을 하는 정도다. 서울 종로구 여전도회관에 10여평짜리 사무실을 갖고 있는데 책이며 자료며 모두 그곳에 있다. 시장으로 일하면서 그 전세보증금(7200만원)을 빼서 써버릴까 몇 번 고민도 했지만 그냥 뒀다. 그리로 돌아간다.”
-이명박(李明博) 당선자에게 전임자로서 하고 싶은 말은….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서 기업경영 개념을 접목해 좋은 행정을 펼쳐주기를 바란다. 특히 원지동 추모공원은 1000만 시민에게 필수적인 복지시설이므로 잘 추진했으면 한다. 또 CEO적 감각으로 상암신도시(DMC)를 잘 발전시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성진기자 choi@longa.com
서영아기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