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8강의 쾌거가 온 나라를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의 백성된 기쁨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우리 이웃들이 있다. 언제 이뤄질지도 모를 장기기증을 기약 없이 기다리면서 시한부 삶을 사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정부는 2000년 2월부터 장기이식을 합법화한다는 차원에서 ‘장기이식법’을 제정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장기기증은 종래의 3분의 1 수준으로 격감했다. 1999년 162명이던 장기기증 뇌사자가 법 시행 후인 2000년에는 64명, 2001년 52명, 그리고 금년 상반기에는 13명으로 계속 줄어 올해는 30명을 넘지 못할 전망이다. 그러나 장기이식 대기자는 2000년 2084명이던 것이 금년에는 4월 말 현재 9334명으로 오히려 몇 배나 증가했다. 공식적으로 등록된 수만 해도 그렇다.
▼규제 많아 기증자 매년 줄어▼
현재 장기이식은 보건복지부 산하의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가 전국을 통합해 관리하고 있다. 이 센터는 불법 장기매매를 근절하고 기증된 장기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그러나 나누어 줄 장기가 고갈되어 가는 상황에서 ‘공정한 분배’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공급을 확대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급선무이고, 공정한 분배는 그 다음 문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기이식법의 초점이 ‘규제’가 아닌 장기이식의 ‘효율’에 맞춰져야 한다. 그런데도 이 법은 처음부터 규제에 무게를 둠으로써 차라리 없는 것만도 못한 악법이 되고 말았다.
정부는 장기이식법의 부분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지만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유족 동의절차의 개선, 뇌사판정위원의 1명 축소, 뇌사판정 대상자 관리전문기관 지정이라는 사소한 절차의 변경으로는 부족하다. 근본적으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효율성이 떨어진 부실 공기업을 처리하는 것처럼 과감하게 ‘민영화’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교도소를 민간에 위탁 운영하게 하는 ‘민영교도소’도 도입된다. 이런 때에 민간이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장기기증을 국가가 관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정부의 관료주의는 규제에는 전문일 수 있어도 무슨 일을 적극적으로 도모하는 데는 효율적이기 힘들다. 장기이식을 법으로 인정한 17개국 가운데 국가관리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장기이식에 필요한 뇌사자를 발굴, 관리, 적출, 이식하는 모든 일은 의사가 한다. ‘장기이식관리센터’의 공무원이 하는 것이 아니다. 공무원은 그 일에 대한 도우미 역할을 할 뿐이다. 그렇다면 뇌사판정부터 이식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의사의 양심을 믿지 못하면 장기기증을 활성화하기는 어렵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뇌사판정을 7∼10명이 모여서 하라는 것은 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미국은 2명이 한다. 문제가 있을 때 그들의 책임을 물으면 된다. 헌법은 법관의 ‘양심’을 제3의 판결기준으로 인정하고 있고, 검사도 기소 불기소에 대한 양심의 재량을 갖는다. 그런데도 장기이식법은 의사의 양심을 믿지 않는다. 의사면허가 정지 내지 취소될 수도 있는 불법을 감행할 의사는 많지 않다.
아울러 어렵게 장기이식을 결정한 유가족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들을 서류준비 등의 일로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 ‘센터’는 이런 일을 대신해주는 봉사기관이어야 한다. 공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뇌사자의 경우 유언장이 없으면 유가족이나 친척에 대한 기증도 불가능하게 한 것은 지나친 처사다. 뇌사자를 발견한 병원에 대해서도 인센티브를 주어 뇌사자 발굴에 적극적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실컷 고생만 하고 남 좋은 일 시키는’ 것을 보통의 의사들이 계속해서 하기는 어렵다. 아울러 장기기증자에 대한 일정한 사례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일이다. 선행에 대한 심리적 만족으로 장기기증을 독려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것을 두고 유가족이 생명을 파는 것으로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이렇게 최소한의 액수로 공식화한다면 밀매의 음지는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法 폐지…민간에 맡겨야▼
현재 사후 장기기증을 서약한 사람은 3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의 고귀한 뜻이 결실을 보려면 현재의 ‘장기이식법’은 개정하지 말고 폐지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원점에 서서 1만명에 가까운 꺼져 가는 생명을 한 사람이라도 더 건질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민간관리로 넘기고 국가는 위법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에 그치는 것이 그 방법이다.
배종대 고려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