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립대 총장들이 현행 대학 학부제에 대해 집단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은 학부제로 인기학과와 비인기학과의 불균형이 심해져 기초학문이 고사 위기에 처하는 등의 현실적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학부제 도입 배경〓교육인적자원부는 학과 중심의 학문 구조가 대학 발전을 가로막아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판단해 95년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각 대학이 학부제를 도입하도록 했다. 시행여부는 형식상 대학 자율에 맡겼지만 학부제 실시 여부를 대학 평가에 반영해 예산 지원에 차등을 두기 때문에 대학들은 학부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
▽학문간 편중현상〓응용학문인 공대와 경영대는 인문대 사회대 자연대보다 상대적으로 순탄하게 학부제가 정착됐다는 평가다.
경영학과와 회계학과, 화공과와 공업화학과의 통합 등은 유사학과를 묶은 사례다. 그러나 자연대 기초학부나, 영문과 불문과 독문과 스페인어과를 통합한 서양어문학부는 이름만 학부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대학생들이 적성보다 학과 인기에 따라 전공을 선택해 인기학과와 비인기학과의 편중현상이 심해져 비인기학과 교수들의 반발이 거셌다.
정석중(鄭碩鍾·전남대 총장) 국공립대총장협의회장은 “인기학과도 학생이 늘어나는데도 교수나 시설이 부족해 대형 강의가 늘어나는 등 교육의 질은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수 학생도 불만〓한국교육개발원의 ‘학부제 운영 성과에 대한 분석연구’에 따르면 교수 438명, 대학생 187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교수 47.5%, 학생 47.7%가 학부제가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교수의 86.8%, 학생의 84.9%가 일부 전공에 학생들이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고 응답했는데 ‘매우 심하다’는 응답은 교수(42.9%)가 학생(25.1%)보다 높아 교수들이 학문 편중에 대한 불만이 컸다.
학부제는 선후배간의 유대관계나 학생들의 소속감을 줄여 학생들이 1학년 때 방황하게 되고 학생지도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안은〓국공립대총장협의회는 학부제 운영은 대학 자율로 하고 대학평가와 연계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공립대는 교수 선발이나 예산 배정에서 자율성이 적어 그만큼 사립대에 뒤질 수밖에 없다는 것.
대학들은 또 학문 편중을 막기 위해 모집단위의 일정 부분을 학과별로 뽑을 수 있도록 절충안을 제시하고 있다.
고려대 신현석(申鉉奭·교육학) 교수는 “상위권 대학이나 지방대 모두 일률적으로 학부제를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대학이나 학과의 형편을 고려해 대학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인철기자 in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