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 신화를 이룬 한국축구처럼 한국경제는 아시아에서 가장 화려하게 부활했다.
내수가 지난해 경기를 이끌더니 최근엔 수출까지 살아날 조짐이다. 외신들은 “실직자들이 우글대던 서울이 4년 만에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며 찬탄 일색이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한국축구의 신화창조와 한국경제의 부활을 아무리 치켜세워도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부채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원금만 104조원인 공적자금의 대부분이 국가부채로 되돌아와 한국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1조원이 얼마만한 돈인가. 빳빳한 1만원권 100장을 묶은 돈다발을 007가방에 가득 채워도 고작 1억원이다. 이런 가방을 1만개 쌓아야 1조원이다.
잇따른 월드컵 승전보에 열광하는 사이에도 한해 10조원이 소리없이 이자로만 빠져나가고 있다. 한해 쏟아붓는 사회복지 예산과 맞먹는 규모다.
공적자금의 불합리한 운용을 질타하는 전문가들도 공적자금 투입이 필요했고 상당규모의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한 민간연구소는 최근 “공적자금 덕택에 성장률이 조금씩 높아지고 세수(稅收)가 늘어 결국 재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그러나 이는 20여년 뒤의 일. 당장 80조원대로 추정되는 손실액을 메우는 지혜는 지금 세대의 몫이다. 다음 주에 손실액 보전대책을 내놓을 예정인 정부는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국민(국채발행)과 금융권이 분담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는다.
공적자금에 대해 정치권 한쪽은 방만한 공적자금 운용을 공격하고 다른 한쪽은 ‘공적자금을 쏟아부어야 했던 과거의 실정(失政)을 기억하라’고 되받아친다. 그러나 국민에게 ‘왜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지’를 설득하고 합리적인 손실처리 계획을 마련하라고 정부를 독려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공적자금이 당초 예상을 넘어선 것은 대우의 몰락 탓이었다. 그러나 정치권은 2차 공적자금 조성의 책임을 따지다 대우가 쓰러진 지 1년 뒤에야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손실규모를 키운 셈이다. 공적자금과 관련한 정치권의 오류는 그 한번으로 족하다.
박래정기자 경제부 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