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자의 사고법/니노미야 세이준 지음 이정환 옮김/240쪽 9000원 청어람미디어
사회 생활에서는 실력만으로 도저히 안 되는 상황이 있다. 그러나 스포츠에서는 일단 게임에 들어가면, 모든 경기자에게 동일한 규칙이 적용된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은 일상에서는 아무리 원해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공정성’과 ‘공평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패자를 위로할 때 ‘운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건 틀린 말이다. ‘운’은 게임을 하는 도중에 양측을 끊임없이 매 순간마다 똑같은 비중으로 오간다. 그래서 운은 필연이다.
일본의 스포츠 저널리스트는 이처럼 운을 필연으로 만든 승자(勝者)들을 추적했다. 그가 쓴 ‘승자의 사고법’은 축구, 야구, 배구, 럭비, 수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승리한 명장(名將)과 명선수들을 찾아 다니며 발굴한 성공 전략서다.
게임에서의 승자가 인생에서의 승자는 아니다. 그러나 어차피 삶도 게임의 연속이다. 저자가 스포츠 현장에서 발견한 ‘승자의 사고법’이 일상의 우리에게도 유효한 이유다.
우리는 흔히 훌륭한 운동 선수는 체력이나 기술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에게는 독특한 사고법이 있다. 저자가 정리한 ‘승자의 사고법’은 대략 여섯가지다.
우선, ‘자유분방함’이다.
1976년 한국의 유제두를 쓰러 뜨리고 두 번째 타이틀 획득에 성공한 복서 와지마 고이치는 주니어 미들급 세계 챔피언을 여섯 차례나 방어한 명복서다. 그는 택시를 타다가 기사가 무심코 창 밖을 보는 순간, 함께 눈길을 돌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상대의 시선을 일순간 다른 쪽으로 돌려 허점이 보이는 순간, 주먹을 날리는 ‘개구리 뛰기 펀치’를 개발해 성공했다.
“승리를 움켜쥐는 자는 경기 전부터 그 게임의 모든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전략을 구상한다. 내가 스포츠 현장에서 취재를 거듭하면서 느낀 점은 승자는 항상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패자는 자신의 발상에만 집착한다.”
두 번째 사고법은 ‘제너럴리스트적 스페셜리스트의 사고’다.
축구에서 ‘토탈 사커’는 오래된 이야기다. 이제 포워드의 수비나 수비진의 공격 참가는 당연하게 받아 들여지고 있다. (이번 월드컵 한국-이탈리아 전에서 한국 선수들의 멀티 플레이가 빛을 발했던 일이 떠오른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개발·제조 부문 사원은 유통·판매 부문 사원들 마음으로 상품을 만들어야 하고, 유통·판매 부문 사원은 개발·제조부문 사원들이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 지 이해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이제는 올인원(all-in-one) 타입의 인간이 아니면 통용되지 않는다.
셋째 사고법은 ‘진정한 라이벌은 과거의 자신’이라는 사고다.
럭비감독 우에다는 맡은 팀마다 최고를 만든 전설적 인물이다. 현역으로 뛸 때도 최고 선수였던 그가 감독으로서도 성공한 데 대해 본인은 이렇게 말한다.
“감독을 맡았을 때 내 라이벌은 누구일까 자문했다. 다름아닌, 14, 15년 전 나 자신이었다. 이미 선수로서 최고였던 내게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진보를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저돌적인 럭비’가 아니라 ‘스마트한 럭비’였다. 내가 대학다닐 때는 시합 전날, 상대편 대학 감독의 인형을 만들어 불을 붙이는 식으로 캠프 파이어를 벌이곤 했다. 나는 그런 의식(儀式) 따위는 과감히 버렸다. 맹연습만 시켜서는 선수들이 따라오지 않는 시대가 돼버린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승자의 사고법’ 넷째는, 치밀하되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은 흐름에 맡긴다는 ‘여유’다.
프로야구 선수 노모는 시합 전에, 던져야 할 볼 하나하나를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한다고 한다. 눈 앞에 있는 각각의 문제에 대해 답을 끌어 내 시합에서 형상화 시킨다. 경기가 끝나면, 던진 볼 하나 하나를 되새겨 보고 검증하고 잘못이 있으면 원인을 분석하고 수정하고 답을 낸 뒤에야 잠 든다.
1996년 9월 17일, 내셔널 리그 서부지역 우승을 다투는 시합에서 노모는 선발로 등판했다. 심리적 압박에 전날부터 내린 비와 덮쳐오는 한기, 경기 지연 등 악재가 겹쳤지만 노모는 ‘잘 버티면 5회’라는 예상을 뒤엎고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경기를 기다리는 동안 여느 때처럼 CD를 들으면서 앞으로 모든 상황을 머리 속에 그렸다. 그리고 내 능력으로 안 되는 것은 흐름에 맡기겠다고 생각했다.”
승리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노모는 이렇게 말했다.
다섯째는 ‘강자(强者)’가 이긴다는 것이 아니라 ‘적자(適者)’가 이긴다는 사고법이다.
메이저 리그 투수 하세가와는 1997년 시즌에서 3승7패 무세이브로 출발했으나 이듬해 8승 3패 5세이브, 2000년 10승 6패 9세이브라는 좋은 성적으로 마감했다.
“처음에 성적이 좋지 못해 구원 투수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내키지 않았지만 명령에 따랐다. ‘생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위기’라고 생각하는 순간마다 ‘어떻게 해야 살아 남을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팀에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렇게,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었다고 한다.
‘승자의 사고법’ 마지막 여섯 번째는 리더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저자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보다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고쳐 나가는 쪽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 감독(리더)은 선수들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임무다. 감독(리더)은 상사가 아니다. 단순한 역할이다”고 말한다.
개성강한 선수들을 당근과 채찍으로 적절히 조종하려면 감독(리더)은 심리학자, 연출가, 배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열거한 승자의 사고법은 한국 축구의 비상(飛上)을 보는 우리에게도 남다르지 않다. 축제의 호스트가 또한 승자가 될 수도 있는 기대로 한반도는 지금 축제의 도가니다. 그러나, 축제는 순간이지만, 삶은 지속된다.
이 대목에서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지적한 ‘혼미’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로마의 멸망은 대부분 연구자들이 말하는 사치나 퇴폐가 아니었다. 성공에는 성공했기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가 항상 따른다. 그것이 로마인들의 ‘혼미’였다. 적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것, 그것이 진정한 고뇌였던 것이다.”
순간의 승자가 아닌, 영원의 승자를 위해, 우리는 더 깊고 넓은 고통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