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균이 얼굴 빨갛게 만드는 데 1분도 안 걸릴걸요.”
“…….”
“이렇게 평범한 얼굴로 영화 주연을….”
19일 오후 한 극장에서 있었던 영화 ‘서프라이즈’(Suprise)의 기자 시사회. 영화 제작사인 ‘씨네 2000’ 이춘연 사장이 주연 배우들을 소개하면서 악의없는 농담을 계속 던져도 당사자인 신하균(28)은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웃기만 했다. 정말 얼굴이 약간 붉어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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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균은 ‘배꼽이 예쁜 청년’이기도 하다. 커피 CF 중 그가 기차에서 만난 매력적인 여성의 가방을 올려준 뒤 “배꼽이 참 예쁘시네요”라는 말에 얼마나 수줍게 웃던가.
하지만 이 ‘착한 청년’은 최근 한국 영화가 발굴한 기대주가 됐다. 그는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를 시작으로 ‘킬러들의 수다’ ‘복수는 나의 것’ ‘묻지 마 패밀리’ 등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영화 속 그의 얼굴을 떠올려볼까. ‘…JSA’의 북한군 병사, ‘킬러…’의 단순무식한 킬러, ‘복수…’에서 핏빛 복수극에 빠져 장기 사기범의 목에 흉기를 꽂는 유, ‘묻지 마…’의 3류 양아치….
그는 한번에 주연 자리를 꿰차는 ‘욕심꾸러기’는 아니다. 비중은 작아도 꼭 있어야할 배우였고, 어떤 배역을 맡겨도 무리없이 소화하는 ‘멀티 플레이어’였다.
“신하균은 연기를 잘하기는커녕 연기를 ‘그냥’ 할 것 같지도 않다. 말수가 적은 사람도 가끔 멋진 말을 하는데 하균이는 그것마저 썰렁하다. 하균이를 배우로 만든 것은 신인 때부터 지닌 대단한 자신감이다. 훌륭한 연기에 대한 모방보다는 자기 색깔의 연기를 해내고 있다.”(‘…JSA’ ‘복수…’의 박찬욱 감독)
7월5일 개봉 예정인 ‘서프라이즈’는 친구 미령(김민희)의 남자 친구를 사랑하게 된 하영(이요원)과 그녀에게 빠져드는 정우(신하균)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코믹하게 그렸다.
미령이 정우와 교제를 반대하는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남자 목욕탕에까지 뛰어드는 ‘좌충우돌형’이라면 하영은 사랑에 끌리면서도 우정을 선택하는 ‘절개형’이다.
이 작품은 새로울 것은 없지만 톡톡 튀는 웃음과 적당한 멜로, 해피 엔드로 젊은 관객층을 겨냥하고 있다.
신하균의 입장에서는 이 작품은 새로운 도전이다. 98년 ‘기막힌 사내들’로 데뷔한 뒤 처음하는 멜로 영화. 남성 배우로서는 ‘원 톱’으로 흥행을 혼자서 책임지는 ‘진짜 주연’이 됐다. 10여편의 시나리오에서 고른 작품이다.
“평범하게 생겨서인지 멜로 영화에 출연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영화계에서도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필요하고 개인적으로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색깔의 캐릭터를 소화하고 싶었습니다. 재미있고 깔끔한 느낌이 드는 로맨틱 코미디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그는 “참, 깜빡했다”며 “멜로 영화의 주연 경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연했다는 멜로 영화는 2000년 이요원과 찍은 ‘포지션’의 뮤직비디오 ‘I Love You’였다.
허허실실(虛虛實實),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슬쩍 그냥 질문을 던졌다.
“첫 멜로 영화네요. 연애를 하니까 멜로 연기가 잘 됩니까.”
지난해 ‘복수…’를 촬영하다 연인 사이로 발전한 영화배우 배두나(23)를 겨냥한 이야기다.
둘은 애인이라는 사실을 공개했지만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인터뷰는 사양해왔다.
신하균의 얼굴에서 다시 웃음이 번져나왔다. 잠깐 뜸을 들인 뒤 그는 “그런 것은 아니다. 이 나이에 처음하는 연애도 아닌데…”라고 말했다.
한술 더 떠 할리우드에서는 배우들이 계약할 때 영화 홍보를 위해 ‘스캔들’ 조항을 넣기도 하는 데 두사람이 인터뷰를 피하는 것은 프로페셔널한 모습은 아니다고 따졌다.
이에 신하균은 “난 배우인 만큼 연기로 평가받고 싶고, 또 그게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리고 여기는 한국”이라고 했다.
다시 한번. “극중 미령과 하영 가운데 누가 그래도 배두나씨랑 비슷한 스타일입니까”라고 물었다.
“거긴 없어요”가 그의 대답이었다.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그의 웃음에는 확고한 연기 철학이 배어 있다.
“고교를 졸업하면서 서울예대로 진학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가 ‘니 얼굴에, 니 성격에 무슨 배우냐’는 말이었습니다. 꽃미남은 제 몫이 아니죠.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난 새로운 캐릭터를 누구와도 닮지 않은 나의 연기로 담아내고 싶습니다.”
▼연인 배두나가 본 신하균은…"감성-이성 잘 조화"▼
배두나가 본 연인 신하균은 어떨까?
그는 “배우 신하균은 누구보다 감성과 이성이 잘 결합돼 있는 배우”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연극 배우 출신은 무대에서 과장된 연기가 많은 편인데 하균이 오빠는 그런 면이 별로 없다”면서 “하균이 오빠는 내가 만난 남자 배우 가운데 파트너를 가장 잘 배려하면서도 자기 몫도 잘 챙기는 연기자”라고 말했다.
신하균이 출연한 작품의 캐릭터에 대한 배두나의 평도 흥미롭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사랑스럽고, ‘킬러들의 수다’는 귀엽고, ‘복수는 나의 것’은 최고 아닙니까. 오빠 출연작을 모두 봤는데 나중에는 ‘반칙왕’에 두컷 출연한 것도 보이더군요.”
영화가 맺어준 두 사람은 요즘에는 영화 때문에 ‘따로 커플’이 됐다.
신하균은 부산에서 ‘지구를 지켜라’를, 배두나는 경기 남양주시 종합촬영소에서 ‘굳세어라, 금순아’를 촬영하고 있다.
배두나는 스크린 밖 사랑에서도 당당하다.
그는 “자주 못 만나지만 전화로 여러 이야기를 나눈다”면서 “우리는 가끔 연예계에 있는 ‘홍보성 커플’이 아니라 ‘진짜 커플’”이라고 했다.
“신하균이 말수도 적고 무뚝뚝하지 않냐”고 묻자 그는 “나만 웃겨주니까 정말 좋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배두나는 또 “‘복수는 나의 것’에서 하균이 오빠와의 베드신도 있어 관심이 영화보다 다른 쪽으로 쏠릴 것 같아 인터뷰를 사양했다”며 “작품이 서로 마음에 든다면 한 작품에 같이 출연하는 것도 꺼릴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