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의 일이다. 역사상 최고의 왼손투수중 한명으로 꼽히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빅 유닛(거인)’ 랜디 존슨은 ‘스몰 유닛(꼬마)’ 김병현의 올스타 탈락 소식을 듣고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내가 올스타전에 나가게 된 것은 막강 불펜과 타선 덕분이었다. 김병현이 올스타에 뽑히지 않은 것은 어떤 방법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고 분개했다.
당시 김병현은 개막후 한달여가 지나서야 구원 임무를 맡았지만 7월초까지 32경기에서 38과 3분의2이닝을 던져 평균자책 1.86에 삼진 68개를 잡으며 내셔널리그 공동 6위인 13세이브를 기록중이었다.
선발의 칼자루를 쥐고 있던 내셔널리그 올스타 사령탑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바비 콕스는 성적이 처지는 자기 팀 선발 그렉 매덕스와 톰 글래빈을 무리하게 집어넣으려다 보니 지명도에서 떨어지는 김병현을 밀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김병현은 이제 어엿한 전국구 스타로 성장했다. 지난해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 4,5차전에서 이틀 연속 통한의 홈런을 맞은 것은 오히려 보약이 됐다. 내셔널리그 최연소 50세이브 달성에 이은 양키스전의 통쾌한 설욕을 지켜본 미국의 야구팬은 이제 ‘병현 김’은 몰라도 그의 애칭인 ‘BK’만은 확실하게 알게 됐다.
올시즌 리그 공동 4위인 19세이브(3승)에 평균자책 1.22를 기록중인 놀라운 성적표도 김병현의 올스타 선발을 예고하고 있다. 애리조나의 봅 브렌리 감독이 올스타 사령탑인 것에 일부에선 걱정들을 하고 있지만 분명 유리함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다만 여전히 불안한 게 있다면 지난해 우승팀 애리조나에는 팬투표로 뽑히는 포지션별 베스트9은 없는 대신 감독 추천으로 뽑혀야 할 올스타 후보가 워낙 많다는 점.
당장에 선발투수인 ‘원투펀치’ 존슨과 커트 실링은 당연직 후보. 외야수 루이스 곤살레스와 포수 대미안 밀러도 뽑히지 않으면 이변으로 불릴 경우다. 여기에 김병현마저 가세한다면 한 팀에서 5명의 선수가 배출되는 셈.
7월10일 밀워키에서 열리는 올스타전에 김병현과 함께 내셔널리그 16개팀 선수가 골고루 출전할 수 있는 브렌리감독의 묘수풀이를 기대해 본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