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 열었는데 손님은 갈수록 줄고….’
장밋빛 청사진으로 시작한 증시 보조시장들이 맥을 못 추고 있다. 밤에도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개설된 야간 전자장외거래시장(ECN)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6월에 26억원에 불과하다. 작년 12월 출범 당시(71억원)에 비해 3분의 1로 줄어든 것. 벤처붐을 타고 2000년 3월 출범한 제3시장도 하루 거래량이 2억원도 안 된다. ‘코스닥50 선물시장’도 마찬가지다.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며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한마디로 고사(枯死) 위기다.
▽시들어가는 시장〓ECN시장은 개설 당시 하루 평균 300억원대 거래 규모를 목표로 했다. 6월의 경우 목표치의 10분의 1 이하로 떨어진 셈. 그나마 조금 거래가 많았던 21일(42억원)도 거래소와 코스닥시장의 평균 거래대금 4조∼5조원에 비하면 0.1%에 불과하다.
한국선물거래소가 운영하는 코스닥50선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월30일 상장돼 한때 월 거래량이 7만7130계약까지 늘어났지만 올 5월에는 3904계약으로 감소했다.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코스피200선물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코스피200선물은 98년 6만1279계약이던 하루 평균 거래량은 2001년 12만8058계약으로 성장세를 타고 있다.
2000년 3월 벤처붐을 타고 제3시장이 출범할 때 하루 평균 거래량은 5억원, 100만주를 웃돌았다. 월 거래량은 100억원. 그러나 지난 해부터 거래가 줄어들어 올해는 하루 평균 거래량이 2억원대로 감소했다. 6월부터는 하루 1억원대 거래가 이뤄지는 날도 늘었다. 삼성전자 300주 수준이다.
증권업협회가 최근 제3시장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기업들의 68%는 ‘스스로 지정 취소를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쯤 되면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를 만들어주고 코스닥 등록이나 거래소 상장을 도와준다는 시장 설립 목적을 달성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다.
▽‘폭탄주(株)’와 개인만 활개〓ECN시장은 코스피200종목과 코스닥50종목 등 총 250개 종목을 다루지만 6월21일 거래된 종목은 142개. 이 가운데 이른바 ‘폭탄주’의 대명사인 하이닉스반도체가 전체 거래량(228만주)의 85%를 차지하는 등 투기성이 강하다.
하이닉스 외에 거래량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종목은 계몽사(1.7%) 미래산업(1.4%) 신원(1.3%) 등 단 4종목에 불과하다. 시장이라고 말하기에 민망한 수준.
개인의 매매 비중은 매월 99%를 웃돌아 ‘개인들만의 시장’이기도 하다.
제3시장도 비슷하다. 매수 금액을 기준으로 개인 거래 비중은 2001년 평균 99.7%다.
코스닥50선물시장도 기관투자가와 외국인투자자로부터 외면당하기는 마찬가지. 기관과 외국인들은 선물과 현물 모두 코스닥 투자 비중이 작다. 6월1∼20일 코스닥 현물시장에서의 기관 및 외국인 투자가 거래 비중은 각각 3.0%와 3.4%. 같은 기간 거래소 현물시장에서의 거래 비중은 각각 14.6%와 13.6%였다.
▽제도적 걸림돌〓시장 침체의 가장 큰 원인은 제도적 한계다. 한국 ECN증권 경영기획팀 박일 팀장은 “야간 거래의 경우 시황에 따라 가격이 변동하지 못하고 그날 종가로만 거래된다”며 “차익을 얻을 수 없는 구조로 투자 메리트가 없다”고 지적했다. 저녁시간에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재료가 나올 때도 ‘팔자’ 또는 ‘사자’ 가운데 한 쪽 주문만 쌓여 거래 자체가 안 된다.
제3시장은 상대매매라는 제도가 걸림돌. 상대매매는 매도자와 매수자가 제시한 가격과 주식 수량이 완벽하게 일치해야 거래가 이뤄지는 제도다. 심지어 팔겠다는 가격보다 더 높은 값에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도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 증권거래세도 거래소나 코스닥의 0.3%보다 높은 0.5%(모두 팔 때만 적용).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차별적 과세도 제3시장 활성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선물거래소는 코스닥50선물시장의 거래 부진의 원인으로 △코스닥 현물시장의 침체 △코스피200선물과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 △기관투자가의 참여 부족 △시장조성 부족 등을 꼽았다.
▽개선대책 효과 있을까〓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증권업협회 등은 6월10일 ‘제3시장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우량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해 제3시장 기업이 일정 요건을 갖추면 코스닥 등록 때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그 동안 없었던 가격변동 제한폭도 ‘±50%’로 정했다.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퇴출 기준도 강화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거래제도 개선과 세금문제는 활성화 방안에서 빠져 있다. 증권업협회 제3시장관리팀 박대순 팀장은 “증권거래법을 바꾸지 않고는 상대매매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며 “세제 혜택을 외면한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ECN시장도 증권거래법에 발목이 잡혀 있다. 법을 고쳐 가격 변동이 허용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ECN증권 시장운영팀 손영락 팀장은 “미국은 ECN 거래가격의 제한이 없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며 “오히려 시장이 활성화돼 미국의 ECN거래량은 나스닥시장의 40%, 뉴욕증시의 4%나 된다”고 말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