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페인의 월드컵 8강전이 열린 22일 서울시청 앞 광장. 경기 시작 3시간 전부터 한 방송사의 축하공연 생방송과 한 기업이 고용한 응원단장의 응원연습으로 시끌벅적했다.
축하 공연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방송사의 이름만 바뀌어 2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됐다. 귀를 찢는 응원가와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로 옆 사람과의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애초에 시민들이 거리에 나선 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었다. 거리응원이 이번 월드컵의 상징처럼 떠오르기 이전에 경기장에 직접 가지 못한 시민들이 거리의 대형 전광판 앞에서라도 응원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모이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갈수록 많은 사람이 거리응원에 참여하면서 방송사와 기업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방송사들은 거리응원에 편승해 공연을 마련하고 일부 기업은 응원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응원을 리드하는 사람들을 고용해 응원전을 끌고 나갔다.
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기업에서 고용한 수백명의 보안업체 직원들은 가는 곳마다 “돌아가세요” “여기는 못 들어갑니다”라며 응원 행렬을 막기도 했다. 서울시청 앞 광장은 붉은 색 물결 사이로 보이는 검은 색 양복 차림의 보안업체 직원들에 의해 서서히 ‘통제의 장’으로 변해갔다.
한 시민은 “우리는 대표팀을 응원하러 나왔지 가수의 노래를 들으려고 나온 게 아니다”며 짜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대학생도 “마치 교실에서 수업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며 “굳이 앞에서 시키지 않아도 잘 알아서 응원하고 애국가도 부를 수 있는데 일부러 시키니 영 내키지 않았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거리응원은 본질적으로 ‘자율성’과 ‘연대의식’이 생명이다. 자율적으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 사이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거리응원이 자칫 일부 방송사와 기업의 선전목적 때문에 퇴색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김선우기자 사회1부 subli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