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의 새로운 깊이를 보여주는 송수남의 2001년작
최근 한국화가 송수남(64)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관훈동 노화랑에 한국 추상미술 모노크롬의 대부인 박서보(71)가 들어섰다. 박 화백은 전시장을 둘러본 뒤 “음 좋아, 훨씬 좋아졌어. 단순함 속에 담겨있는 먹의 깊이가 매력적이야”라고 말하곤 웃는 얼굴로 송 화백에게 악수를 청했다.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쓴 송 화백은 넉넉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겸연쩍은 듯 “쑥스럽습니다”라는 말로 화답했다.
송수남의 개인전이 7월5일까지 연장 전시에 들어간다. 송 화백은 6년만에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서 절제와 추상의 미학이 돋보이는 수묵화 근작을 선보인다.
작품은 일견 단조롭다. 한 일(一)자의 선이 빼곡할 뿐이다. 어떤 것은 가로로 누워 있고 어떤 것은 세로로 서 있다. 선의 단순 반복이다. 그러나 지루할 듯 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그 선들을 보고 또 보면 잡념이 사라진다. 반복이 가져다주는 무념무상의 세계, 순수의 세계다.
그에 걸맞게 작품엔 군더더기가 없다. 먹의 농담과 강약 만으로 모든 것을 말해준다. 담백하고 투명하다. 한국 수묵화의 깊이를 한층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대목에서다.
한 일자의 선은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완벽하고 가장 원초적이다. 곧음과 정직이다. 작가의 말.
“선을 긋는 행위는 하나가 모든 것이 되고 모든 것이 다시 하나로 귀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생명의 태동이다. 나는 이 혼탁한 세상에 삶의 순수를 되찾기 위해 선을 그리고 또 그린다.”
따라서 작가에게 선을 긋는 작업은 일종의 선(禪)의 수행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간결하고 추상적인 선 하나 하나가 마치 대나무 숲을 연상시킨다. 거기서 전해오는 댓잎 부딪히는 소리의 서늘함. 물질의 세계는 온 데 간 데 없고 명징한 정신의 세계만이 남는다. 이 더운 날씨, 느슨해진 우리의 정신을 일깨운다.
이처럼 깊고 투명한 수묵화에 작품 이름을 붙인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누가 되는 일일까. 그래서인지 작가는 이번 전시작에 작품 이름을 하나도 붙이지 않았다. 이 역시 절제의 미학이다. 02-732-3558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