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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프로기사 기풍따라 축구팀 만들면…공수 조화 '최강'

입력 | 2002-06-25 18:03:00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세계 강호를 연파하며 월드컵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한국 축구 대표팀.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지도력, 노장과 신예의 조화, 강인한 체력과 조직력이 결합돼 ‘큰 일’을 해냈다.

만약 프로기사의 기풍에 따라 축구 포지션을 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김성룡 7단의 도움을 받아 현 대표팀의 3-4-3 포메이션을 기준으로 한 프로기사 축구팀 베스트 11을 정해봤다.

조훈현-유창혁-최철한-이세돌로 이어지는 공격진과 이창호-최명훈-양재호의 스리백 수비진은 세계 최강의 팀이라 할 만하다.

▽조훈현 9단(황선홍)〓막강한 공격력과 탁월한 감각, 위기에 빠질 때 상대 수비를 헤집는 ‘흔들기’ 등 대형 스트라이커의 능력을 고루 갖췄다. 체력 문제로 90분(제한시간 5시간)을 풀타임으로 뛸 경우 수비(이창호 9단)에게 걸려 골을 놓치는 것이 유일한 흠.

▽유창혁 9단(안정환)〓화려하면서도 매끈한 공격, 한번 찬스를 잡으면 사정없이 몰아치는 파괴력 등은 안정환과 무척 닮았다. 둘다 곱상한 외모의 소유자로 아내들도 미인.

▽최철한 4단(설기현)〓정교한 맛은 덜하나 상대방을 단숨에 제치는 괴력의 돌파력은 설기현 선수와 비슷하다. 다만 실력에 비해 결정력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

▽이세돌 3단(이천수)〓반상을 종횡무진 누비며 정확하고 현란한 수읽기(드리블)로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는 재주꾼. 다만 너무 수읽기를 과신한 나머지 무리하게 돌파하다가 자충수를 두는 경우가 있다.

▽목진석 6단(유상철)〓멀티플 플레이어답게 공수에 두루 능하고 특별한 약점이 없다. 종종 강력한 대포알 슛으로 이창호 9단의 무릎을 꿇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박영훈 3단(이영표)〓아마추어 시절부터 치고 빠지는 영리한 바둑을 둬온 박 3단은 꾀돌이 이영표 선수와 가장 닮았다. 바둑(축구)이 아니면 죽고 못사는 점도 똑같다.

▽조한승 6단(송종국)〓흙 속에 묻혀 있다가 드디어 빛을 발하고 있는 진주. 무딘 듯 하면서도 절대 꺾이지 않고 지구전에 강하다.

▽박정상 2단, 원성진 4단(김남일)〓화려하지 않지만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며 실속을 챙긴다.

▽이창호 9단(홍명보)〓평소 과묵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스타일. 안전 위주의 플레이를 하며 꾸준히 기다리고 스스로 찬스를 만들 줄도 안다. 자타가 공인하는 부동의 리베로.

▽최명훈 8단(김태영)〓끝내기에서 상대방의 추월을 허용하지 않는 뚝심과 상대방의 태클에 전혀 굴하지 않는다. 가끔 상대방이 무리수를 둘 경우 불같이 응징한다. (김태영 선수는 이탈리아전 때 상대방이 뒤에서 잡자 팔꿈치로 상대를 가격했음)

▽양재호 9단(최진철)〓강인함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뛰어난 공격수에게 거미처럼 달라붙어 쉽게 뚫리지 않는다.

▽안조영 7단(이운재)〓‘반집의 승부사’답게 미세한 승부에서 절대 실점하지 않는 철벽 방어를 한다.

이외에 서봉수 9단은 승부 근성을 갖춘 최용수 선수와 비슷하고 윤준상 초단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인 차두리와 어울린다.

히딩크 감독에 견줄만한 이는 찾기 쉽지 않다는 게 중평. 히딩크 감독의 실천적 리더십과 카리스마, 개성 등이 아직 철저히 ‘분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바둑 기사로 본 대표팀 감독으로는 인품과 경력 등으로 볼 때 김인 9단이 적임이고 전술 코치는 서울대 정치학과 박사 출신의 문용직 4단과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인 정수현 9단, 트레이닝 코치에는 후배들의 신망을 받으면서도 혹독하게 훈련을 시킬 수 있는 최규병 9단이 거론된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