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강의 부담 없이 연구에 전념하는 교수직을 구한다는 공개구직으로 화제가 됐던 서울대 국문학과 조동일(63) 교수가 30여 년 연구의 결정판으로 ‘세계문학사의 전개’(지식산업사)를 내놨다.
이 책은 그동안 조 교수가 집필했던 ‘세계문학사의 허실’ ‘문명권의 동질성과 이질성’, ‘철학사와 문학사 둘인가 하나인가’,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 등 11권의 완결편인 셈이다.
“선진국을 따라가며 그 말석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제3세계의 선두에 서자는 입장에서 서구중심적 관점을 극복한 세계문학사를 쓴 것입니다. 서구중심의 단선적 발전관인 헤겔이나 마르크스의 관점이 아니라 다양한 구성요소들이 서로 상생상극한다는 동양의 ‘생극론(生克論)’을 택한 것이지요.”
조 교수는 그 동안 이 책을 쓰기 위해 미국 중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등 전 세계에서 쓰여진 세계문학사 38종을 섭렵했다.
“약 30년 전에 처음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봤을 때 어떻게 그런 책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경외감과 함께 학자로서 좌절감까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한국문학통사’(지식산업사)를 써서 한국문학사를 정리했고, 이번에는 그 둘을 모두 넘어서는 세계문학사를 쓴 것입니다.”
하우저의 책은 문학사와 사회사를 통합한 것이지만 ‘세계문학사의 전개’는 철학사까지도 결합해서 세계문학사를 서술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고도 한 권으로 압축하느라 애를 썼다고 한다. 이 책은 전문가보다는 일반인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 자세한 내용을 원한다면 앞서 발간된 11권을 봐야 한다.
그는 오랜 문화적 전통과 일반 독자의 관심, 풍족해진 경제적 여건 등을 볼 때 한국의 문화 풍토에 희망이 있다고 강조했다. 5권짜리 ‘한국문학통사’가 4만 질이나 팔린 것을 봐도 일반 독자의 수준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자국 중심의 대국주의 때문에, 일본은 자신들을 유럽이라고 여기는 생각 때문에 객관적으로 제대로 된 세계문학사가 나오지 못합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인이 오히려 더 유리한 위치에 있어요.”
조 교수는 “2년 간 3700만원을 지원해 준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선도연구자지원 연구비’가 이번 책 출간에 큰 도움이 됐다”며 고마워했다. 뛰어난 연구 역량을 가진 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1999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올해부터 1년에 2000만원, 최대 2년까지라는 제한 규정도 없애고 재능 있는 연구자들을 집중 지원한다. 하지만 조 교수는 여전히 강의 때문에 연구에 전념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학자들도 재능이 다 다릅니다. 저처럼 연구에 능력이 있는 사람은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연구교수’ 제도를 만들어야 학자들이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나라에 다 있는 제도인데 우리나라에만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김형찬 기자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