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따뜻한 얘기를 해 볼까요?
얼마전,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를 수입한 영화사 홈페이지에 e메일이 한 통 날아왔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죠.
“이곳 영동군 학산면은 경북 충남 전북 충북의 경계를 이루는 지역입니다. 백두대간 줄기가 경계를 나누는 깊은 산골이지요. 영동군을 통틀어도 극장 하나 없어, 영화를 보려면 대전까지 가야 합니다. 더구나 요즘은 주작물인 포도 농사로 가장 바쁜 때라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밤에야 볼 수 있습니다…(중략)…우리 아이들이 그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메일을 보낸 분은 서른 두살의 주부였더군요.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일곱 살 난 딸과 학산면 아이들을 대신해 사연을 띄웠답니다. 학산면은 초등학교도 한 곳뿐이고, 전교생이 50여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입니다.(극장까지는 세 시간도 넘게 걸려도, e메일은 읍내만 나가면 쓸 수 있다고 합니다. 역시 대∼한민국은 정보강국이죠?)
이 사연을 접한 영화사 측은 멋진 결정을 내렸더군요. 학산면 아이들을 위해 영사기를 들고 직접 찾아가기로 한 것이지요. 그리고, 드디어 오늘(26일) 학산초등학교 강당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상영합니다!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한껏 흥분해 영화를 볼 아이들을 생각하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집니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주인공인 어린 ‘토토’도 떠오르고요. 누가 아나요? 어린 토토가 나중에 영화 감독이 됐듯, 학산면 어린이 중에서 장차 훌륭한 애니메이션 감독이 나올지….
학산면을 계기로 문화 소외 지역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비행기 1등석처럼 누워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둥, 고급 수입 소재를 사용해 의자 한 개 가격이 40만원에 이른다는 둥 호화로움을 강조한 서울의 최신 멀티플렉스들이 떠올라 씁쓸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산골 마을 시사를 결정한 영화사에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한가지 사소한 아쉬움도 있네요. 마케팅 담당자가 산골 시사라는 미담을 ‘널리 알리고자’(?) 했는지 방송국에 동행 취재 문의를 했더군요. 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