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재 [동아일보 자료사진]
《‘끝없는 욕심.’그에게서 이것을 빼면 남는 게 없다. 그렇다고 절대 이기심은 아니다.이번 월드컵에서 일약 ‘거미손’ 골키퍼로 떠오른 한국축구대표팀 수문장 이운재(29·수원 삼성). 그가 철벽 방어를 선보이며 한국을 월드컵 4강에 올려놓아 대회 최고의 골키퍼에게 주는 ‘야신상’후보로까지 거론되는 데는 끊임없는 욕심과 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을 눈앞에 두고 대표팀 발탁의 기대에 부풀었던 이운재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들었다. 폐결핵. 94년 대표팀에 발탁돼 2년간이나 피를 말리는 강훈련을 받으며 땀을 흘렸는데 올림픽 직전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야 했다.
폐결핵의 원인은 영양부족. 당시 러시아 출신의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이 살을 빼면 경기에 내보내준다고 해 살인적인 감량을 실시하면서 발생한 것이었다. 이운재는 1년6개월 만에 93㎏에서 73㎏으로 20㎏이나 뺐다. 전문가들은 대표 선수가 이 정도로 살을 뺀다는 것은 거의 죽을 각오를 한 것이라고 말한다. 여하튼 감량에 성공해 비쇼베츠 감독의 신뢰를 얻으려는 순간이었는데 물거품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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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욕심이 부른 결과였다. 2년여의 투병생활을 해야했던 이운재는 이로 인해 98년 프랑스월드컵에는 아예 출전조차 못했다.
그러나 그에겐 좌절이란 없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기약없는 치료를 끈기있게 참아냈고 2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완전한 몸으로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물론 성실한 훈련으로 차근차근 예전의 기량을 회복한 결과였다. 96년 삼성에 입단했으나 폐결핵에 군입대까지 겹쳐 다소 힘겨운 생활이 계속됐지만 그는 꿈을 갖고 훈련에만 매진했다.
그러자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해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대표팀 사령탑을 맡으면서다. 주전 김병지가 다소 튀는 플레이를 하는 바람에 히딩크 감독의 눈밖에 나자 기회가 그에게 찾아 온 것.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히딩크 감독이 요구하는 대로 사력을 다했고 한점 흐트러짐 없는 플레이로 히딩크 감독의 신뢰를 듬뿍 받았다.
지난해 11월 히딩크 감독의 눈밖에 났던 김병지가 다시 대표팀에 돌아올 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운재가 골문을 김병지에게 내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결과는? 이운재가 월드컵의 모든 경기를 소화하고 있다. 이운재는 5경기를 치르는 동안 10일 미국전과 18일 이탈리아전에서 각각 1실점, 실점률 0.4골을 기록중이다. 22일 스페인과의 4강전에선 연장전까지 단 한점도 안내준 뒤 승부차기에서 상대 네 번째 키커 호아킨 산체스의 슛을 막아내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 같은 영광 속에서도 이운재는 결코 우쭐하지 않는다. 이운재는 “병지형이 저보다 훨씬 잘 막아요. 그런데 운이 없었을 뿐이에요”라고 김병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양보도 않는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한 법. 지난해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에 5골을 혼자서 먹고도 오히려 “16강을 넘어 4강도 갈 것”이라고 자신했던 이운재. 그는 끝없는 욕심과 도전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의 또 다른 욕심은 무엇일까.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이운재는…
▽생년월일〓1973년 4월26일 충북 청주 출생
▽신체조건〓1m82, 82㎏
▽출신학교〓청주상고-경희대-수원 삼성-상무-수원 삼성
▽국가대표팀경기 데뷔〓94년 3월5일 미국과의 친선경기
▽주요 경력〓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본선, 94년 미국월드컵 본선, 96년 애틀랜타올림픽 예선, 2000년 북중미 골드컵, 2000년 아시안컵,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2002년 북중미골드컵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