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장한 태극전사' [동아일보 자료사진]
한국의 월드컵 4강 진출에 새로운 힘이라도 얻었을까.
이형택(삼성증권)이 한국 테니스의 역사를 다시 썼다. 125년 역사를 지닌 최고 권위의 윔블던(총상금 1286만달러)에서 한국인 남자 선수로는 사상 첫 승리를 따낸 것이었다.
25일 영국 런던 근교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남자단식 1회전. 세계 랭킹 95위 이형택은 풀세트 접전 끝에 세계 110위 안드레이 스톨리아로프(러시아)를 3-2(6-3, 6-2, 4-6, 4-6, 6-2)로 눌렀다.
한국과 스페인의 월드컵 8강전 이후 스페인 선수들로부터 놀림을 받았다는 이형택은 축구 때문인지 첫판을 이긴 뒤 독일의 ARD방송, 영국 BBC 등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이형택은 “두 세트를 앞서다 집중력이 떨어져 2-2 세트올을 허용해 힘들었지만 고비를 잘 넘겼다”며 “백핸드 다운더라인과 포어핸드 스트로크가 잘 먹혀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현지에서 월드컵 중계를 봤다는 “황선홍 유상철 등 대학선배들의 활약으로 한국 축구가 준결승에 오른 데 자극을 받아 더욱 열심히 뛰었다”며 “독일을 누르고 결승에 오르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예선 3경기를 거쳐 어렵게 본선 출전권을 따낸 이형택은 한국인 남자 선수 최초로 2회전에 진출, 2000년 US오픈에서 이룬 16강 신화 재연을 향해 힘차게 출발했다. 지난해 대회 때에는 본선에 직행했으나 1회전에서 탈락했었다. 한국인 여자선수로는 박성희가 95년과 96년 2년 연속 윔블던 2회전 무대를 밟았다.
이형택은 위르겐 멜처(오스트리아)를 3-0으로 꺾은 홈코트의 23번 시드 그레그 루세드스키(29)와 3회전을 진출을 다툰다. 세계 39위 루세드스키는 지난해 4회전까지 진출했으며 1m93의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최고 시속 210㎞대의 강서브가 주무기.
이형택은 건국대 시절인 95년 서울에서 열린 KAL컵에서 루세드스키와 한차례 싸워 0-2로 패했다. 루세드스키가 강력한 서브와 이형택이 껄끄럽게 여기는 왼손잡이인데다 홈 잇점까지 있어 힘든 상대로 꼽힌다.
하지만 이형택이 최근 잔디코트에서 절정의 컨디션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으며 위기관리능력까지 붙어 해볼만하다는 평가. 삼성증권 최희준 코치는 “이형택은 누구를 만나도 이길 자신이 생겼으며 상대에 따라 승부가 갈리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안드레 아가시, 피트 샘프러스도 가볍게 2회전에 올랐으며 여자단식에서도 메이저 2연승을 노리는 세레나 윌리엄스와 제니퍼 캐프리아티(이상 미국)가 무난히 1회전을 통과했다.
한편 ‘코트의 섹시스타’ 안나 쿠르니코바는 21번 시드의 타티아나 파노바(이상 러시아)에게 1-2로 패해 탈락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