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 기쁘게 해주기라는 병/해리엇 브레이커 지음 이창식 옮김/348쪽 1만2000원 넥서스북스
‘남을 기쁘게 해 주는 것이 병이라고?’
미국에서 20여년 넘게 심리 컨설턴트로 일해 온 저자는 수백명의 환자들이 ‘남 기쁘게 해주기 병’에 걸려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끝없이 남에게 인정 받으려 하고, 남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들어주며 절대로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의 삶은 더 악화되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남을 기쁘게 해주려는 심리는 호인(好人)이라는 ‘강한 자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 호의(好意)는 남을 기쁘게 해 주려는 사람들의 심리적 갑옷이다. 남을 기쁘게 해 주려고 애쓰는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남들에게 호의를 베풂으로써 사랑을 받고, 그들의 비열함과 거부, 분노, 갈등, 비판, 무시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러다 보니 남들과 부딪혔을 때도 그들을 비난하지 못하고 조용히 참도록 만든다. 이 모두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에 대한 강박과 중독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얼핏 보면 남을 기쁘게 해 주려는 노력이 좋은 인간 관계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되고 훌륭한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되는 성향처럼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남에게 하는 노력만큼의 대가를 자신이 받기를 바라고 있으며 만약, 그 기대에 어긋나면 더 많이 실망하고 깊은 상처를 받는다. 남에게 베푸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상실감과 자괴감으로 또 다른 병을 얻는 것이다.
그들은 화내거나 남과 충돌하는 것이 두려워 ‘괜찮은 사람’ ‘남을 기쁘게 해 주는 사람’으로 위장해 자신을 방어한다. 표면적으로는 인간성 좋은 사람으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온화한 얼굴’ 뒤에 자신의 진짜 분노를 감추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저자는 ‘남 기쁘게 해주기’ 병의 유형을 사고형 감정형 행동형 셋으로 나눈다. 병이 충동적인 행동에서 비롯된 것인 지, 비뚤어진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 지, 부정적인 감정을 회피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 지 분석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세 가지가 뒤얽혀 있거나 한가지 유형이 나머지 두가지를 지배하기도 한다. 각 장마다 자신의 상태를 진단하고 해석할 수 있는 체크 리스트와 해석을 싣고 있다. 심층 분석이 끝나면 증상 치유를 위한 액션플랜이 21일 동안 데일리(daily) 프로그램으로 소개되고 있다.
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이 책을 소개하면서 “남을 기쁘게 해 주려는 증세가 특히 나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개인적인 문제다. 오랫동안 이 문제로 고민했지만 극복하기 어려웠다. 많은 여성들이, 남자들도 마찬가지지만, 건강과 행복까지 희생하면서 스스로에게 강요한 이 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책 한권으로 심리 분석과 치유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남 기쁘게 해주기’가 사실은, 일종의 ‘증상’일 수 있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는 될 듯 싶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