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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천년동안 변치않는 최고의 종이 '우리 한지'

입력 | 2002-06-28 18:13:00


◇ 우리 한지/이승철 지음/328쪽 2만5000원 현암사

‘봄이 되면 사람들은 풀비를 들고 너덜너덜해진 창호지와 문풍지를 갈아 붙이면서 한 해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창호지로 연을 만들어 달라고 응석을 부렸다. 따사로운 아침햇살을 은은하게 실내로 끌어 들이기도 하고, 휘영청 밝은 달빛에 매화꽃 나뭇가지 그림자를 드리워 수많은 사람의 시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신혼부부가 자는 신방의 창호지는 신랑 신부의 행동을 엿보려는 동네 꼬마들이나 아낙들이 침을 발라 구멍을 뚫어 수난을 겪기도 했다. 동지 섣달 한겨울에는 매서운 찬바람을 막아내며 악기처럼 울어 대던 문풍지 소리….’

‘紙千年絹五百(종이는 천년이요 비단은 오백이라)’라는 말이 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지켜 낸 한지는 천년이 넘도록 우리 손을 바쁘게 했던 소재다. 현암사가 내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시리즈 중 하나인 ‘우리 한지’는 전통 한지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한지 박물관과도 같은 책이다.

자연염색, 염료, 먹 등 고유의 미술 재료를 꾸준히 연구해 온 이승철 간송박물관 전통문화연구원이 10년 넘게 모은 방대한 한지 관련 자료를 집대성했다.

저자는 전통 한지의 태동기인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는 한지의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한 후 그 제작 방법과 다양한 쓰임새를 300여장의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 내구성, 통기성, 유연성, 방음성, 단열성, 습도 조절 능력, 자외선 차단 기능 등 한지의 우수성을 물리적, 화학적 실험을 통해 입증해 보인다.

책에는 감지, 황지, 외발도침지, 외발일반지, 쌍발일반지, 화선지, 기계지 등 7종의 한지 견본이 부착돼 있어 독자가 직접 보고 만지면서 한지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외국인을 위해 한지의 역사와 우수성, 용도, 제작법 등을 간략히 정리한 영문초록도 덧붙였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