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가 요구해온 호주제 폐지 문제는 찬반 양론이 팽팽한 ‘뜨거운 감자’로만 다뤄져 왔다. 호주제 보완 대책으로 국회에 제출된 친양자제도 법안이 아직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국회가 호주제 폐지를 반대해온 쪽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호주제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는 만큼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차원에서 접근하자는 것이다.
현행 호주제는 자녀를 무조건 아버지 호적에 입적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재혼한 어머니의 자녀들은 ‘김씨 아버지 밑에 이씨 아들’ 식으로 새 아버지와 성이 다른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혼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들이 학교나 사회생활에서 겪고 있을 정신적 고통을 한번 생각해 보라. 이혼 가정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이혼 부부는 13만쌍이 넘었다. 가정의 모습이 큰 전환기를 맞고 있는 만큼 법도 현실에 맞게 보완되거나 달라져야 한다.
법리적 측면에서도 현행 호주제는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호주제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제도라는 점은 일단 접어두더라도, 호주 승계 순위가 철저히 남성 위주로 되어 있어 대표적인 남녀차별적 법률이며 이로 인해 남아선호 사상을 부추겨왔다는 여성계의 주장은 귀기울일 만하다.
얼마 전 유림은 호주제에 대해 전과 다른 다소 진전된 입장을 보였다. 호주제를 존속시키되 미흡한 점을 보완하자는 것이다. 과거의 주장을 유지할 수 없게 사회가 달라졌음을 유림도 인정한 것이다. 7월1일 시작되는 여성주간을 앞두고 정부가 호주제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혀 이 문제가 다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이번 기회에 정부는 물론 국회도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시대 변화에 발맞추는 전향적 시각으로 이 문제를 다뤄야 할 것이다. 여론 조사결과 국민 반응도 현행 호주제에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호주제 폐지에 결단을 내릴 때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