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와 패자가 따로 없었다.
29일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은 온통 승리의 함성만이 넘쳐흘렀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양국의 뜨거운 우정을 확인할 수 있는 한판이었다.
경기에 앞서 열린 국민의례 때 관중석에는 ‘붉은 악마’가 준비해 온 대형 터키국기가 펼쳐졌다. 6·25전쟁에 1만5000명을 파병한 ‘혈맹’ 터키에 대한 예의를 표시한 것이었다. 경기장 곳곳에는 터키를 성원하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내걸렸고 ‘붉은 악마’는 태극기와 붉은색 터키 국기를 힘차게 흔들었다.
그동안 터키는 한국에서 열린 조별리그 3경기에서 한국팬의 열띤 응원을 받아 마치 홈게임이라도 치르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과의 경기에서 관중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염려했던 것이 사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경기 시작 직전 양 팀의 선수들은 일제히 이날 서해 연평도에서 발생한 남북한 해군 교전에서 희생된 장병들의 넋을 기리는 묵념까지 했다. 고개를 숙인 터키 선수들의 숙연한 표정은 낯선 이역땅에서 목숨을 잃은 터키 무명용사의 명복도 함께 비는 듯 보였다.
그렇다고 승부의 세계에서 양보는 있을 수 없는 법. 90분 동안 치열한 승부가 펼쳐졌고 거친 몸싸움과 거친 태클로 경기장을 후끈 달궜다.
하지만 심판의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양국의 선수들은 마치 언제 그랬느냐는 듯 정겨운 장면을 연출했다. 다정스럽게 유니폼을 바꿔 입고 어깨동무를 하며 축하와 위로의 악수를 나누었다. 터키 선수들은 어디서 준비해 왔는지 태극기를 펄럭거리며 서서히 경기장을 돌았고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준 한국 관중에게 어깨동무를 한 채 보은의 인사를 반복했다. 6만여 관중은 일제히 “터키, 터키”를 연호하며 마치 한국이 이기기라도 한 듯 박수갈채를 보냈다.승패를 초월해 하나가 된 그들 모두에게서 승리의 환호가 넘실거렸다.
대구〓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