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한일월드컵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내로라하는 강호들을 격파해 국민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과 거리응원에서 단합된 한국의 힘을 온 세계에 떨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아이들이 하도 쇼프로그램에 몰두하는 바람에 집에 TV를 두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매 경기를 거리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필자를 감동시킨 것은 카리스마를 가진 거스 히딩크 감독과 부상을 무릅쓰고 눈물겹게 사력을 다해 싸운 선수들, 거리응원에 나선 700만명의 인파였다. 그러나 시합이 끝나고 많은 사람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줍고 심지어 빗자루로 쓸어야만 될 것 같은 작은 종이조각까지 줍는 것을 보고는 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대부분은 학생과 젊은이였지만 나이 드신 어른들도 있었다.
지난달 미국인 교수와 청소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초중고교 시절 교실청소를 청소부가 하고 학생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청소시간이라는 것이 있어서 학생들이 교실바닥과 유리창을 닦는데 이런 것은 한국의 시스템이 더 좋은 것 같다고 하니까 그 교수는 자기도 필자의 말에 동의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학생들이 왜 대학교에 가서는 휴지와 종이컵, 담배꽁초 등을 함부로 버려 학교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을 때 변명할 말이 없었다.
며칠 전 신문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교민 8000명이 모여 단체로 응원하고 나서 쓰레기를 다 치워 교통경찰이 “응원단이 모이기 전보다 더 깨끗해졌다”고 감탄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순위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시민의식이 현저히 향상된 것을 느꼈다. 이것이 바로 월드컵의 큰 소득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한국인은 냄비속성이 있다고 한다. 쉽게 끓고 흥분하다가 얼마 지나면 금방 식는다는 말이다. 앞으로 수십년간은 한국에서 월드컵이 개최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제는 이 열기를 어떻게 승화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한국의 등록선수는 우리에게 패한 외국의 수십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필자는 ‘전북 현대모터스’ 서포터스에 가입하기로 했다. 앞으로 철벽수비의 주역이었던 최진철 선수의 ‘형님부대’가 되어 프로축구 경기장에서 그의 경기를 즐길 것이다. 홍명보 선수가 1억원이 넘는 거금을 쾌척해 축구장학회를 만든 것도 우리를 감동케 한다. 필자도 가난한 시골 초등학교 축구팀을 찾아 축구공과 축구화를 선물하고 싶다. 우리에게 평생 처음 맛보는 엄청난 환희를 가져다 준 한국 축구를 위해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다음 번 월드컵에는 명장 히딩크 감독도, 관중석을 가득 메운 ‘붉은 악마’의 홈그라운드 이점도 없다. 우리가 이 열기를 어린 꿈나무 발굴, 선수층 저변 확대, 프로축구의 활성화 같은 축구의 기반 확대에 쏟지 않는다면 이번과 같은 좋은 성적은 다시는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박성광 전북대 의대 교수·내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