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연 지연요? 처음부터 없습니다. 열 두 번째 선수인 ‘서포터즈’요? 처음부터 많았습니다. 저희들이 한국축구의 ‘모델’입니다.”
시인들이 매달 모여 공을 찬다. 함민복 박형준 김요일씨 등 27명의 엔트리 명단을 가진 축구모임 ‘글발’이 그들. 매달 ‘15일에서 가장 가까운 토요일’ 오후마다 서울 경동고 운동장에 모여 경기를 갖는다. 대학 동문 등으로 구성된 외부팀과 친선경기를 갖기도 하지만, ‘글발’내부에서 편을 갈라 경기를 갖는 경우가 대부분.
“창립 동기라…. 쉽게 말해 친목 도모라고 할 수 있겠죠. 문학계 안에는 ‘섹터’니 ‘파벌’이니 ‘편가르기’니 말이 많지 않습니까. 어떤 구별에도 얽매이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모일 수 있는 시인 모임을 만들자는 생각이 동기가 된 것 같습니다.”
수소문 끝에 만난 ‘연락책’ 전윤호 시인(동방미디어 주간)은 “모임에 구심점은 없다. 나도 전화로 참가를 권유하는 역할 정도만 한다”고 밝혔다. 시작된 것은 2년전 쯤. 보다 정확한 ‘설립연도’를 수소문해 알아보겠다는 기자를 그는 만류했다. “어려울 걸요. 시인들이 원래 숫자 같은 걸 잘 기억하지 못하는 부류 아닙니까.”
모임에 특별한 규칙은 없다. 등단 시인으로서 참가 의사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단 하나의 규칙이라면 ‘모임에서 시 얘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라는 것. 전 시인은 “파벌주의를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시인들은 서로 라이벌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임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명단에는 여성 시인의 이름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분들이 바로 우리들의 서포터즈입니다”라고 전 시인은 설명했다. 특히 ‘분위기 고조’와 느슨해지기 쉬운 뒷풀이 등의 ‘회계업무’에 톡톡히 한 몫을 한다는 것.
특별한 주도자가 없지만 ‘구단주’는 있다. 모임의 최연장자인 이정주 시인을 ‘선수’들은 ‘구단주’라고 부른다. 초등학교 축구코치를 지낸 김왕노 시인은 직접 주전으로 뛰기도 하지만 때로 전략을 짜는 ‘감독’역할도 서슴치 않는다.
6월 전국을 달아오르게 한 월드컵 열기가 이들을 비껴갔을 리 없다. 2년여만에 홈페이지 (http://gulbal.ce.ro)를 마련한 날짜도 월드컵 개막전이 열린 5월31일.
“북한에는 정부 주도의 시인 조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들의 대표팀과 한번 친선경기를 갖는다면 의미깊은 일이 될겁니다. 일본 중국 등에도 시인 축구팀이 있다면 겨뤄보고 싶어요. 동아시아 ‘최강팀’임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나는 연락책에 불과하지만…”이라는 말을 시종일관 입에서 떼지 않은 전 시인은 “이 문제만큼은 팀 구성원 들의 합의를 거친 의견”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