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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수비수 칭찬엔 너무 인색"…월드컵 30대주부 결산토크

입력 | 2002-07-01 18:46:00


《대한민국이 한달간 월드컵 열병을 앓았다.

월드컵 신드롬을 확산시키는데 TV가 큰 영향을 미쳤다. 선수들의 미세한 움직임은 물론, 길거리 응원을 주도한 ‘붉은 악마’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담아내 현장의 감동을 그대로 전했다.

이제 축제는 끝났고 남은 것은 아름다운 마무리뿐.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이 있던 29일 오후 정숙경(37) 정경아(〃) 백양순씨(35) 등 ‘아줌마’ 3명이 마지막 한국전을 시청하며 1개월 동안의 ‘TV속 월드컵’을 정리했다. 편집자》

#TV속 월드컵의 말 말 말

-방송 3사가 간판급 캐스터와 해설자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SBS 송재익 캐스터-신문선 해설위원은 지나치게 재미에만 치우친 것 같아요. 경기 분석도 있었지만 너무 수식이 많아 경기를 차분하게 보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했어요.

-MBC 차범근 해설위원은 말은 어눌해도 경기 흐름을 잘 짚었습니다. 그의 해설에 깃든 인간적인 면모도 좋았구요.

-한번은 차두리 선수가 화면이 비치자 “제 아들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오히려 인간적이었던 것 같아요. 혹자는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해설자의 자질을 의심하기도 했지만.

-히딩크 감독의 공적 중 하나는 대표선수 기용에 있어 학연과 지연을 없앴다는 점이죠. 그런데도 첫승을 거둔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건국대 출신인 황선홍과 유상철이 골을 넣자 SBS 신문선 위원은 “오늘은 건국대의 날”이라는 말만 되풀이했어요. 눈살이 찌푸려지더군요.

-며칠전 최화정씨가 라디오에서 한국이 독일 대신 결승에 가게 됐다는 유언비어를 방송해 물의를 빚었죠. 애교나 실수일수도 있지만 그 말을 듣고 붉은 악마 T셔츠를 대량 주문해 낭패를 본 상인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방송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최씨가 경솔했습니다.

#'우려먹기'는 그만

-각종 쇼프로에서 지나치게 월드컵 소재를 우려먹어 식상했습니다.

-안정환 선수 부인이나 김남일 선수 아버지는 토크쇼 단골 손님이었죠. 내용도 엇비슷했습니다.

-공격수에게만 스폿라이트가 집중된 것도 씁쓸했습니다. 중계할 때도 골을 넣은 선수만 칭찬할 뿐 어시스트나 수비를 철저히 한 선수에 대해서는 언급이 별로 없었죠.

-경기 직후의 뉴스는 월드컵 일색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응원 열기나 교포들의 현지 반응 등 화면과 내용이 비슷했어요. 축구 시청률을 이어가려는 속셈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다른 정보가 궁금했어요.

-MBC ‘뉴스데스크’에서 장례식장의 관람기를 보여준 적이 있어요. 한국이 골을 넣자 상주가 펄쩍 뛰며 좋아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더군요. 재미있었지만 상주의 얼굴 만큼은 모자이크 처리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외신의 반응에 너무 민감했던 것 같습니다. 외국 언론에서 한국을 칭찬한 부분에 대해 지나치게 크게 보도했죠. 사대주의를 연상시켜 씁쓸했어요.

#마무리를 고민해야

-이번 응원 열기를 보면서 한편 서글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 국민이 그동안 얼마나 신나는 일이 없었으면 이 정도일까….

-무엇보다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이제는 본업으로 돌아가야죠. 월드컵에 온통 관심이 쏠려 본업에 소홀했던 면이 없지 않아요. 방송 역시 월드컵으로 모아진 국민적 에너지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방송은 월드컵 열기를 고조시키는데만 총력을 기울였지요. 월드컵은 하나의 즐거운 축제일 뿐인데 방송은 선수들을 ‘전사’라고 표현하며 전쟁에 가깝게 표현했어요. “꼭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선수는 물론 시청자들에게 심어줬죠.

-얼마전 어느 프로그램에선가 국가 대표 선수들을 매주 1명씩 집중 조명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시청자들은 이번 월드컵이 안겨준 자긍심을 평생 안고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