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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플레이를 합시다]김갑유/국제소송 외국인에 불리해서야

입력 | 2002-07-01 18:46:00


미국과의 월드컵 예선전에서 동점골을 넣은 안정환 선수의 골 세리머니를 보고 우리 국민은 미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억울하게 금메달을 빼앗겼던 김동성 선수의 일을 떠올렸다. 김 선수의 일은 국민 모두에게 언페어(unfair)한 결정, 그것도 고칠 수 없는 언페어한 결정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한국이 포르투갈을 꺾고 16강에 진출하자 이를 시기한 일부 외국 언론이 “심판이 페어(fair)하지 못했다”는 ‘언페어’한 보도를 하는 것을 보고 우리 국민은 다시 한번 분노했다. 그런가 하면 터키와 브라질 경기에서 주심의 결정에 터키 국민이 분노할 때 우리는 당혹스러웠다.

서로 다른 국가에 속한 당사자간의 분쟁을 다루는 국제 중재나 국제 소송에서도 중재 판정부 내지 재판부가 자국 이익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또는 아무런 합리적 이유 없이 언페어 한 결정을 내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러한 언페어한 결정의 심각성은 김동성 선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결정에 불복할 방법이 없거나 극히 제한되어 있다. 아무런 하자 없이 발행한 신용장을 합리적 이유 없이 지급을 정지시키는 결정을 하는 외국 법원의 판결은 사실상 국내 당사자에게 수출대금을 회수할 방법을 봉쇄해 버린다. 법률상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는 손해에 대해 부당하게 천문학적인 손해 배상을 판결하는 외국 법원의 판결은 국내 당사자에게 사실상 그 국가에서의 영업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매우 공정한 태도를 보이는 우리 법원에서의 소송절차도 외국당사자에게 언페어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경우가 있다. 외국 당사자와의 분쟁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제도나 절차상의 미비점 때문이다. 소송에서 과도한 사건 수와 시간에 쫓기는 재판부가 변호사의 구두변론이나 반대 신문사항이 길다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것을 보고 외국에서 온 당사자가 언페어하다고 항의할 때 얼굴이 달아오른다.

결정권자가 언페어한 결정을 할 때 그 폐해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만큼 분쟁이나 경기에서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신중하고 공정해야 하는 것이다. 공정하기 위해서는 그 결정에 필요한 충분한 식견과 경험, 그리고 균형감각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언페어한 결정은 외국에서 또는 외국인에 의해서만 내려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내에서 국내인에 의해 더 흔히 내려지고 있다는 것이 국제분쟁을 주로 처리하는 필자의 생각이다. 학연 지연을 중시하는 우리의 ‘안면문화’도 문제지만 국제분쟁 처리에 충분한 경험과 식견이 부족해서 언페어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기업들도 국제분쟁에서 내국인보다 외국인을 분쟁 해결담당자로 선정하는 경우가 많다. 국제분쟁의 대부분이 외국의 분쟁처리 기관과 외국인에 의해 처리되고 있다. 페어한 국제분쟁의 처리는 국가경쟁력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하루빨리 국제분쟁에서의 페어한 절차와 결정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국내 분쟁처리 절차의 실질적인 보완과 아울러 국제분쟁 전문가의 양성이 이뤄져야 한다.

김갑유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