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월드컵이 열렸던 6월 한달 동안 우리는 너무나 행복했다. 전혀 상상도 못했던 감격과 환희, 끓어오르는 열정으로 우리 모두는 하나됨을 느꼈다. 과연 우리가 한국인으로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이제 월드컵은 끝났다.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불거져나오는 공적 자금 논란은 우리의 현실이 월드컵에도 불구하고 여전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지난주 정부가 발표한 공적 자금 상환대책(안)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을 위해 투입한 공적 자금 156조원 중 69조원은 회수가 불가능한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다 이미 지급했거나 앞으로 지급해야 할 이자를 포함하면 그 규모는 훨씬 커진다. 이미 예상된 일이었지만 공적 자금의 손실은 이제 우리의 몫으로 돌아왔다. 회수불능인 공적 자금 손실에 대한 정부의 분담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25년 동안 정부가 49조원을 떠안고 나머지 20조원은 금융권에서 부담한다는 것이다.
▼금융시스템 획기적 개혁을▼
금융권은 앞으로 25년 간 예금보험료를 추가 인상해서 충당하고 정부는 조세감면 축소와 에너지 등 일부 세율의 인상으로 공적 자금 손실을 메운다는 것이다. 이 같은 손실분담 원칙이 적절한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문제는 공적 자금 손실을 정부와 금융권이 분담하는 모양새를 보이지만 결국 직 간접적으로 대부분 국민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이번에 정부가 처음으로 공적 자금 손실추계를 밝히고 상환대책을 제시한 것은 일단 의미 있는 일이다. 정부는 그 동안 공적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한 예금보험기금 채권의 만기가 돌아옴에 따라 차환발행을 위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예보채 차환발행 동의안은 작년 11월에 국회에 제출됐으나 아직까지 처리되지 않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공적 자금 운영에 대해 우선 국정조사를 하자는 방침이다. 즉 선(先) 국정조사, 후(後) 예보채 차환동의를 주장해 왔다. 이와 같이 예보채 문제가 정치 쟁점화하자 공적 자금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정부가 장기 상환계획안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예보채 차환 문제가 적시에 처리되지 않으면 예금보험공사가 자금 경색에 빠지고 금융구조조정이 지연되는 것은 물론 정부의 개혁의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국가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어차피 공적 자금 운영 및 손실에 대해 자세한 원인과 규모, 그리고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필요하다면 국정조사는 사후적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공적자금을 투입함으로써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마비된 금융시스템을 회복시켰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금융기관의 누적된 부실을 정리해 건전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등 구조조정에 상당한 성과가 있었던 것도 공적 자금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최근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한국의 국가신용도를 A등급으로 올리고 있으며 국내 경기도 조기에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장기적으로 공적 자금 투입의 효과가 비용보다 크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는 공적 자금 손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또한 공적 자금 운영에서 낭비나 비능률은 없었는지도 따져보아야 한다. 이자까지 포함해 앞으로 공적 자금을 상환하기 위해 국민 1인당 부담해야 할 금액은 200만원가량 될 수도 있다. 이것은 비능률적이고 부실한 금융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따르는 비싼 수선비 내지 관리비라고 하겠다.
▼상시구조조정체제 필요▼
따라서 공적 자금 논란의 핵심은 어떻게 금융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혁함으로써 과도한 관리비를 줄이느냐에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공적 자금을 효율적으로 운영해 금융시스템을 건전하게 발전시키고 무엇보다도 외환·금융위기의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근래에 신흥시장국 중에는 주기적으로 외환위기가 재발되어 그때마다 공적 자금을 낭비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금융부실화 및 금융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 금융시장의 상시 구조조정체제를 확립하고 금융건전성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효율적인 공적자금 관리를 통해서 국민 부담도 최소화해야 한다. 정부는 금융시장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손실 분담 및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한편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야 간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금융위기의 재발 방지뿐만 아니라 모처럼 월드컵을 통해 이룩한 전 국민의 일체감과 행복감을 지속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재웅 성균관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