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서울우유는 고급 발효유 ‘네버다이 칸’에 SK의 OK캐쉬백 쿠폰을 달았다. 이를 잘라 수거함에 넣으면 고객의 계좌에 장당 50원(50포인트)씩 송금해준다.
그 결과 쿠폰을 단 제품이 달지 않은 제품보다 최고 30% 가량 더 팔렸다. 서울우유는 쿠폰을 단 품목을 현재 7개로 확대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으로 취급되던 마일리지가 시장을 움직이는 힘으로 질적 전환을 하고 있다. 통합 마일리지 서비스로 포인트를 모으는 방법이 많아지고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이 확대된 데 따른 것이다.
예를 들어 1년간 포인트를 모아도 겨우 식빵 한두 개를 공짜로 받는 정도였던 베이커리 업체의 마일리지가 다른 업체들의 마일리지 망과 연결되면서 쓰임새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전략컨설팅업체 모니터컴퍼니의 송기홍 부사장은 “일종의 ‘고객서비스’로 출발한 마일리지가 업체간 연합으로 효용이 급증해 시장을 움직일 정도로 성장했다”면서 “흩어진 고객의 힘이 마일리지를 매개로 집중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일리지가 고객서비스 수준을 넘어선 사례는 외국에서는 드물다. 송 부사장은 “한국에서는 마일리지가 독자 수익모델을 지향할 정도로 차원이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면서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라고 말했다.
▽가능성은 확인됐다〓통합 마일리지 서비스 가운데 가장 앞섰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OK캐쉬백이다. 당초 주유소 마일리지에서 시작해 지금은 대부분의 소비생활을 포함할 정도로 확대됐다.
과자 치약 요구르트 맛살 등 170여개 제품에 소비자가의 5∼10%에 해당하는 쿠폰이 붙어 있고, 제휴 신용카드로 포인트(사용 금액의 0.2∼0.6%)가 적립된다. 미용실 커피숍 패스트푸드점 등 오프라인 캐쉬백 가맹점도 5만5000여곳에 이른다. 특히 ‘써먹을 곳’이 늘수록 소비자의 효용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는 ‘네트워크 효과‘가 나타나면서 회원이 폭증하고 있다.
SK는 회원 1850만명(6월말 기준) 가운데 적게는 30만명, 많게는 100만명 정도가 이 서비스를 찾아다니는 적극적 고객으로 추산하고 있다. 산도 등 6개 제품에 이 서비스를 활용 중인 크라운제과 마케팅팀 함창민 차장은 “평균 10% 이상 매출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효과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서비스는 이미 독자 수익모델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99년 6월 출발한 OK캐쉬백은 올 4월부터 월별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시스템 구축 비용 등 누적 적자 300억원도 2004년 중반이면 모두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SK는 내다보고 있다.
▽고객 자산이 핵심〓서비스에 참여하는 업체는 마일리지 상당액을 부담한다. 서울우유에 SK의 OK캐쉬백 쿠폰을 붙이지만 돈은 서울우유가 내는 식이다. 하지만 매출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차원의 고객관계관리(CRM)가 가능하게 됐다. 규모가 작은 업체로서는 꿈꿔보지 못했던 마케팅이다.
서울우유는 최근 고객 20여만명에게 e메일로 신제품 우유 ‘헬로우 앙팡 베이비’ 소개 자료를 보냈다. 서울우유의 쿠폰을 오려서 제출한 고객 정보를 활용해 1∼3세 아이가 있을 나이인 25∼32세 주부를 추려낸 마케팅이었다.
SK는 엄청난 양의 고객데이터가 정유업체에서 종합 마케팅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순화 박사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제품의 고객 정보를 모으고 이를 분석해 타깃 마케팅을 하는 방법은 CRM의 혁명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누적 포인트가 소액 결제의 수단으로 발전하면 전자상거래 시대에 많은 가능성을 갖게 된다. 업체들이 앞다퉈 이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SK 캐쉬백사업팀 김용갑 부장은 “정보 유출 부담 때문에 신용카드 정보를 입력하지 않는 고객도 포인트로는 부담 없이 대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발업체들의 추격〓롯데와 제일제당 등은 앞다퉈 계열사별 고객 정보를 통합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롯데는 연말까지 호텔 백화점 할인점 편의점 인터넷쇼핑몰 등의 고객을 통합할 계획이다. 1000만명으로 추산되는 고객들이 롯데라는 이름이 들어간 곳이면 어디에서든지 마일리지를 쌓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포인트의 쓰임새가 크게 넓어지는 셈이다. 롯데닷컴 강현구 이사는 “일단 롯데 계열사 고객을 묶어 통합 마일리지의 토대를 확보한 뒤 다른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참여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일제당 역시 최근 계열사 레스토랑 ‘스카이락’과 ‘빕스’에서 식사를 하고 적립한 포인트로 CGV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형태로 ‘제일제당그룹 통합 마케팅’ 사업을 시작했다. 제일제당은 온-오프를 망라해 제휴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KTF와 LG 등 마일리지 서비스를 운영하는 업체들도 서비스 확대에 적극적이다. KTF는 고객 나이와 성별에 따라 4개의 브랜드로 관리해온 회원 1000만여명을 통합할 예정이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