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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도발 정부대응 난맥상]‘햇볕’ 좇다 ‘安保’ 갈팡질팡

입력 | 2002-07-03 19:08:00

'긴장의 바다' - 로이터뉴시스


《6·29 서해교전 발생 이후 정부가 보여준 일련의 대응조치를 놓고 “과연 정부가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또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교전 발생 직후 북한에 대한 단호한 조치 천명과 함께 햇볕정책의 기조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상충되는 목소리가 중구난방으로 튀어나오는가 하면 대응도 체계적인 전략 없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이다. 서해교전 이후 정부의 상황인식과 대응조치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우발 충돌’ 간주 사태축소에 급급

국방부는 서해교전 직후 “적의 선제 사격으로 우리 측에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을 볼 때 북측의 도발은 상당한 의도가 있다”고 밝혔다.

김동신(金東信) 국방부장관도 성명에서 ‘악랄하다’는 격한 용어로 북측을 강력 비판했다.

하지만 이후 정부의 대응을 살펴보면 정부가 ‘반드시 북한의 계획적 도발로만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게 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우리 군이 통신 감청을 통해 이 사건이 북한군이 독자적으로 저지른 ‘우발적 행동’이라고 판단할 만한 단서를 확보했다는 얘기도 떠돌았다.

때마침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2일 “한국 정부가 서해교전은 우발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를 일본 정부에 전달했으며 우발적 발생을 이유로 주변 국가들에 냉정하게 대처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군 정보관계자도 “설사 북 해군의 통신내용 중 우발적 사건으로 볼 수 있는 정황 증거가 있더라도 북측이 역정보를 흘렸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석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의 계획적 도발 여부 등에 대해선 사건 발생 닷새가 지나도록 “진상을 좀 더 파악하고 북한동향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같은 태도는 서해교전을 우발적 충돌에 의한 ‘일회성 사건’으로 넘기고 싶다는 정부의 기대가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낳고 있다.

▼수습 서둘다 협상카드 먼저 꺼내

정부는 서해교전 당일 김 국방장관 명의의 대북 성명을 통해 북측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이후 정부의 조치를 보면 그 어디에서도 이 요구를 관철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사건의 파장을 최소화하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줄 만큼 미온적인 대응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오후 일본으로 출국하며 “(서해교전 사태로 인해) 어제는 매우 안타까운 날이었다”면서 “북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동요하지 않고 거리응원에 나서 열렬히 응원해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측에 대한 단호한 입장 표명은 없었다.

임성준(任晟準)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전반적인 남북관계를 어떻게 끌고갈지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검토할 것이다”고 했지만 정부의 대응기조는 이미 ‘햇볕정책 지속, 금강산 관광 등 민간교류 계속’으로 결정돼 있었다.

정세현(丁世鉉) 통일부장관은 “인도적차원의 대북지원과 금강산관광을 중단하면 외국투자가 빠져나가고 수출이 부진해져 결국 우리 경제에 마이너스 효과가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 대해 우리의 협상카드를 먼저 꺼내 보인 격이었다.

북한은 사건 당일 “남조선의 선제공격에 따른 자위적 조치”라고 주장한 데 이어 다음날인 30일 “북방한계선(NLL)을 제거하지 않으면 정전위원회 회담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北-美대화 낙관… 美와 엇박자 행보

정부 관계자들은 서해교전 이후에도 한결같이 다음주에 열릴 예정이었던 미국의 대북(對北) 특사 파견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임성준 수석은 미국의 대북특사 파견에 대해 “예정대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며 미국도 그렇게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도 “미국은 서해교전에도 불구하고 북-미 대화는 계속돼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이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입장이다”고 미국의 대북특사 파견을 자신했다.

그러나 미국의 인식은 우리 정부와는 많이 달랐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2일 “미국은 이번 서해 무력도발 사건을 대단히 우려하고 있다, 대북특사 파견 문제는 이 사건과 북측의 답신을 함께 고려해 검토하겠다”고 말했고, 곧바로 대북특사 파견을 공식 철회했다.

서해교전의 해결책을 북-미 대화 재개라는 돌파구에서 찾고자 했던 정부의 안이한 상황인식이 드러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미국이 대북특사 파견의 일정을 재조정하겠다는 것일 뿐 특사파견을 통한 북-미 대화를 포기하겠다는 뜻이 아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사 방북이 취소된 것보다 한미 간에 대북정책과 관련해 서로 다른 정보를 가지고, 각자 다른 얘기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더 문제이다”고 지적했다.

▼정치권도 중구난방… 혼란 부채질

정치권도 이번 사건에 대해 정확한 진상파악 후 그에 따른 초당적 대응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8·8 재·보선을 겨냥한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활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혼란과 불안을 확산하고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한나라당에선 “당장 군 수뇌부를 문책해야 한다” “햇볕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격앙된 여론을 등에 업고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감을 확대 재생산시키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나라당 김용갑(金容甲) 의원은 “우리의 안보현실에서 ‘친북좌파’에 국군통수권을 맡길 수 없다”며 현 정권에 대해 ‘색깔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민주당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 당 지도부는 ‘선(先) 조사, 후(後) 문책’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금강산관광 등 민간교류 역시 계속돼야 한다고 정리했으나 일반 의원들로부터는 당론에 역행하는 듯한 발언들이 튀어나왔다.

이철희기자 klimt@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서해교전 이후 정부측 발언시기정부당국자발언 내용6.29이상희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적의 선제사격으로 우리측에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을 볼 때 북측의 이번 도발은 상당한 의도가 있다.김동신 국방부장관 성명묵과할 수 없는 무력도발에 대해 우리 정부는 엄중 항의하며, 북한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강력히 요구한다.6.30김대중 대통령 방일 출국 인사북한군의 도발이 있었던 어제도 우리는 월드컵 3, 4위전 경기를 무사히 치러냈다. 우리 국민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임성준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미국의 대북특사 파견은) 예정대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며 미국도 그렇게 할 것으로 본다.7.1김대중 대통령 재일동포 간담회‘햇볕정책은 완전히 끝났다. 다시는 그 방향으로 갈 수 없다’고 보는 사람이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미국은 북한의 서해도발 사태에도 불구하고 북-미대화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에 우리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통일부 당정협의 보고자료미국 특사 방북시 이번 사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북한에 전달될 수 있도록 외교적 경로를 통해 협조 요청하겠다.7.2정세현 통일부장관 라디오 인터뷰인도적 대북지원과 금강산관광을 중단하면 외국투자가 빠져나가고 수출이 부진하게돼 결국 우리 경제에 마이너스 효과가 올 수도 있다.김대중 대통령 귀국 연설만약 북한이 또 다시 군사력으로 우리에게 피해를 입히려고 한다면 그때는 북한도 아주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