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송평인기자의 현장칼럼]'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선수

입력 | 2002-07-04 16:20:00

2002년 한일월드컵 대 스페인전 승부차기에서마지막 골을 넣은 직후의 홍명보 선수


《휘슬이 울리고 경기는 끝났다. 경기장과 길거리의 응원단도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한국 월드컵 대표팀의 맏형이자 주장인 홍명보 선수(33·포항 스틸러스). 그도 선수생활 중 마지막 월드컵 경기가 된 지난달 29일 대구에서의 한국-터키전을 마치고 이튿날 가족들이 있는 포항의 집으로 돌아왔다.

포철 직원들이 주로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는 평소에도 한산한 곳인데 이날은 일요일이어서 더욱 조용했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 출입구의 ‘장하다 홍명보…’라고 적힌 플래카드만이 외로이 바람에 날리며 세계축구계에 ‘아시아의 존재’를 알린 격정의 6월을 증언하고 있었다.》

홍명보 선수와의 대화는 월드컵 3,4위전 한국-터키전으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한국팀은 경기 시작 11초만에 터키팀에게 골을 먹어 기선을 제압당했다. 당시 경기를 끝내고 믹스트 존(Mixed Zone·공동취재구역)을 나오면서 그는 많은 국내외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지만 “실수였다”고 말했을 따름이다.

한국 최고의 수비수인 그가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할 수 있었을까. 그는 ‘절대 변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유상철이 골키퍼에게 패스할 줄 알았다. 그 위치, 그 거리, 그 상황에서 수비수는 골키퍼에게 패스하는 것이 당연하다. 유상철이 내게 볼을 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볼이 날아왔다. 게다가 볼이 떨어진 자리에 빗물이 고여 있어 볼 컨트롤이 좋지 않았다.”

이날 수비진은 이전 경기와는 큰 변화가 있었다. 홍명보를 중심으로 좌우에 서 있던 최진철과 김태영이 부상으로 빠지고 그 자리에 이민성과 유상철이 들어왔다.

“수비는 조직력이다. 최진철 김태영과 월드컵 경기 내내 발을 맞추다가 이민성 유상철로 바뀌니까 호흡이 잘 안 맞았던 것 같다.”

한국팀은 이날 계속 수비 불안을 노출했고 결국 전반에 연거푸 3골을 내줬다. 이날 경기를 보면서 그동안 한국팀이 그토록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노장 트리오 홍명보-최진철-김태영이 편대를 이루고 있는 막강 스리백(three-back)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구경기에서 늘 화려한 조명을 받는 것은 골을 넣는 공격진인데 이날 경기는 새삼 수비진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홍명보는 자신이 출전한 월드컵의 모든 경기를 통틀어서 가장 아쉬웠던 경기로 월드컵 결승 진출을 놓고 싸운 대 독일전을 꼽았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스페인과의 8강전을 연장전까지 치르느라 체력이 소진된 상태였지만 월드컵 결승에 진출할 기회는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대 독일전을 뛰었다. 그러나 독일팀은 우리팀에 비해 워낙 힘이 좋았다. 안타까웠지만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한국 수비의 핵인 홍명보 선수는 대 스페인전을 마치고 4강을 확정지은 뒤 믹스트 존에서 가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월드컵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류는 한 일본 스포츠신문의 기고문에서 “홍명보의 말을 듣고 나는 월드컵이란 단순히 즐기거나 경기를 보러가는 것만이 아니라 ‘가지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썼다. 분명 홍명보는 월드컵이란 브라질과 같은 나라만이 아니라 우리도 가질 수 있는 것임을 인식한 첫 번째 대한민국 국민 중 하나이고 첫 번째 아시아인 중 하나일 것이다.

홍명보는 과거 3차례 월드컵에 출전했으나 그때마다 고배를 마셨다. 꿈의 월드컵 1승. 4강에 오른 지금에 와서 뒤돌아보면 빛바랜 목표로 보이지만 월드컵 1승은 그가 축구선수로서 추구해온 최고의 가치였다.

그에게 ‘지금까지 출전한 월드컵 경기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경기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건 4강을 확정지은 대 스페인전도, 8강을 확정지은 대 이탈리아전도, 16강을 확정지은 대 포르투갈전도 아니었다. 바로 폴란드와의 첫 경기였다.

“첫 경기에 나서는 긴장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경기는 수많은 한국 관중이 지켜보는 데 열렸고 나는 한국팀의 주장으로서 막중한 심리적 부담감을 지고 있었다. 정신없이 뛰었다. 첫 골이 들어가고 두 번째 골이 들어가고 승리할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얼마나 고대했던 월드컵 1승인가. 이 1승의 교두보가 없었다면 16강도 8강도 4강도 없었을 것이다.”

홍명보 선수의 포항 집 아파트 입구에 걸린 플래카드
[사진=송평인기자]

거스 히딩크 감독과 주장 홍명보. 한 사람은 벤치의 감독이고 한 사람은 그라운드의 지휘자다. 홍명보 선수와 얘기를 나누다보면 두 사람 사이의 늦출 수 없는 긴장관계 같은 것이 느껴진다.

흔히들 히딩크 감독의 성공요인으로 기초체력강화를 든다. 셔틀런(shuttle run·20m 왕복달리기) 등으로 구성된 파워프로그램이란 훈련방법을 통해 한국 선수들의 허약한 체력이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다는 얘기다. 그러나 홍명보 선수의 생각은 약간 다르다.

“파워프로그램은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것인지 모르지만 축구 선진국에서는 일반화된 것이다. 나도 일본 J리그에서 활동하면서 그런 훈련을 받아봤다. 히딩크 감독이 일본 선수를 그런 식으로 훈련시켰다면 그들의 체력이 향상됐을까. 아닐 것이다. 어릴 적부터 허구한날 뛰어다닌 우리 선수들은 원래 체력이 강하다. 다만 과거에는 무작정 뛰도록 훈련을 받았다. 히딩크 감독의 달라진 방법은 집중이다. 부족한 부분을 집중 훈련시키고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훈련에서 제외시키는 식이다.”

홍명보 선수는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저서 ‘영원한 리베로’에서 이렇게 썼다.

“한국 지도자들은 볼터치나 컨트롤 훈련을 할 때도 체력훈련까지 병행한다. 천천히 걸어다닐 시간이 없다. 부지런히 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다르다. 볼터치나 컨트롤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도록 여유를 준다. 선수들은 볼 컨트롤 하나, 패스 하나에 집중력을 갖고 임할 수 있다. 한국에선 훈련이 끝나면 꼭 운동장을 몇바퀴씩 돌곤 했다. 그러나 훈련으로 파김치가 된 선수들로선 훈련을 마친 뒤 또 뛰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연히 선수들은 훈련 뒤 뛰어야 하는 부담 때문에 훈련 중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 이것이 외국지도자들의 훈련방식과의 차이다.”

홍명보 선수는 히딩크 감독이 선수단 내의 비생산적인 선후배 질서를 깨뜨렸다는 데 대해서도 이견을 달았다.

“히딩크 감독이 와서가 아니라 원래부터 훈련장에서는 후배들도 종종 나를 보고 ‘홍명보’ ‘홍명보’라고 불렀다. 그러나 훈련장 밖에서는 선배들을 깍듯이 대하라고 후배들에게 가르쳤다. 이 원칙은 히딩크 감독이 오기 전과 후에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주장으로서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팀 베스트 플레이어를 뽑아달라고 주문하자 그는 뜻밖에도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선수들’을 꼽았다. 4강 진출에 따른 포상금을 둘러싸고 경기 기여도에 따라 차등지급을 해야 한다느니 하는 논란이 있었던 것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단호히 동등한 지급을 주장했다.

“경기에 한번도 나오지 못한 선수도 있고 한두번 나오는데 그친 선수도 있다. 선수라면 누구나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는 좌절감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선수단의 분위기를 흐트러뜨릴 수도 있었는데 한번도 그러지 않았다.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그들도 4강 진출에 똑같이 기여했고 똑같은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90년 이탈리아 대회 이후 2002 한일월드컵까지 월드컵 4개 대회에 연속 출전한 홍명보 선수. 그는 기쁘거나 슬프거나 그 감정을 얼굴에 잘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런 그가 대 스페인전의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서 한국팀의 4강을 확정한 후 지은 환한 미소는 4강 신화와 함께 우리 머리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포항〓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