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위한 진혼곡’이라는 뜻의 ‘레퀴엠’(원제 ‘Requiem for a Dream’)은 제목처럼 아예 ‘꿈은 없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영화 속 꿈이 깨진 것은 마약 탓이다.
남편을 잃은 후 사라(엘렌 버스틴)는 초콜릿 먹으며 TV 다이어트 쇼를 보는 게 즐거움이다. 그런데 외아들 해리(자레드 레토)는 마약 살 돈을 마련하기위해 어머니의 TV를 중고품 시장에 팔곤 한다.
그에게는 젊고 아름다운 연인 매리언(제니퍼 코넬리)이 있지만 이들의 공통 취미는 역시 마약 흡입. 어느날 사라는 즐겨보던 TV 쇼에서 출연 섭외를 받자 아들 고교 졸업식에서 입었던 드레스를 꺼내보지만 부어오른 살 탓에 맞지 않자 약물로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동시에 해리는 마약 살 돈이 떨어지자 매리언에게 매춘을 강요하기에 이른다.
▼현란한 영상-음악 압권▼
‘레퀴엠’은 마약이 인간을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 지를 일사천리로 그렸다. 그러나 비슷한 주제의 90년대 ‘마약 영화’와 그 경계가 다르다.
‘트레인스포팅’(1996년) 등이 마약에 기대야했던 젊은 세대의 갈등과 불만에 집중한 ‘청춘 마약 영화’였다면, ‘레퀴엠’은 이들의 마약 탐닉과 그로 인한 파멸을 직접 겨냥한다. 세대나 계층의 구분도 없다.
늙고 돈없는 미망인과 부랑아 연인 등 사회적 마이너리티에 국한된 듯 하면서도, 매리언이 몸 팔고 마약을 얻은 곳은 뉴욕 맨해튼 인근의 고급 사교 클럽이다.
영화는 또 “마약하지 마라”는 식의 ‘계도’ 대신, 마약의 중독성을 현란한 비주얼과 몽환적인 테크노 음악으로 ‘묘사’한다.
‘흡입→혈관에 기포 형성→동공 확대’로 이어지는 마약 투여 과정을 몽타주로 반복하고, 약물 중독된 사라의 눈 앞에 TV속 등장 인물이 튀어나와 말을 시키는 등 마약의 ‘질감’을 극대화한다. 제목부터 결말이 대강 보이는 이 영화가 시종 긴장감을 잃지않는 이유도 이처럼 중독과 탐닉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장면 극적효과▼
‘레퀴엠’의 이러한 ‘비주얼 세례’는 주인공들의 비극과 맞물려 극적 긴장을 더한다. 특히 마약에 찌든 사라 해리와 매리언이 병원과 자기 집 소파에서 죽어가는 장면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느꼈을 편안함과 오버랩되면서 그 비극적 요소가 더욱 선명해진다.
이 영화가 해외 평단에서 ‘MTV풍 마약 우화’로 불리는 것은 이런 이유일 것이다.
하버드대에서 연출을 전공한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33)는 이 영화에서 선보인 재기 넘치는 감각으로 메이저 영화사인 워너브라더스에 스카우트돼 현재 ‘배트맨’ 5탄을 연출하고 있다. ‘뷰티풀 마인드’로 2002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제니퍼 코넬리가 전신 누드신을 펼치며 열연했다. 파격적 영상과 시종일관 마약을 다뤘다는 이유로 지난해 한차례 국내 수입 추천이 거부됐다. 2001년 제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 18세 이상. 12일 개봉.
이승헌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