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 ‘20세기 폭스 코리아’는 9월 초 개봉할 영화의 국내 제목 때문에 요즘 고민 중입니다.
톰 행크스와 폴 뉴먼이 주연한 ‘The Road to Perdition’이라는 영화인데요, 영어 발음 그대로 ‘로드 투 퍼디션’이라고 쓰자니 무슨 뜻인지 모를 것 같고, 직역해서 ‘파멸로 가는 길’이라고 하자니 왠지 ‘찜찜하고’….
사실, ‘파멸로 가는 길’은 예전 같으면 영화가 흥행에 실패할 경우 그 책임을 모두 뒤집어 쓸 수도 있는 제목이지요. (흥행 파멸로 가는 길’? ^^ )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잘 되면 영화 덕분, 안 되면 제목 탓’을 하기도 합니다. 제목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만, 개성이 강한 제목일 경우 영화가 별로거나 흥행에 실패하면 그 제목 때문에 괴로움이 두배로 느는 건 사실입니다.
오늘 개봉하는 한국 영화 ‘서프라이즈’와 다음주 개봉하는 ‘아 유 레디’도 제목 때문에 놀림의 대상이 되고 있는 영화지요. 마지막에 ‘서프라이즈(Surprise)’한 반전이 있다는 홍보 문구와 달리 ‘서프라이즈에는 서프라이즈한 게 없다’는 평을 듣고 있으니까요.
‘아 유 레디?’ 역시 ‘준비됐나요?’라는 제목의 뜻과 달리 준비 안된 영화라는 평을 들을 수 있는 제목인 셈이죠.
패러디 영화인 ‘재밌는 영화’도 그런 의미에서 용감무쌍한 제목이었지요. (‘재미없는 영화’ ^^ ) ‘묻지마 패밀리’도 호평을 받았기에 망정이지, 초반에는 충무로에서 제목이 이상하다는 얘기가 돌았었죠. (“‘묻지마 패밀리’ 재밌어요?”-“묻지마!”)
‘챔피언’도 마찬가집니다. 개봉 첫주 흥행 1위에 올라 ‘흥행 챔피언’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흥행 순위가 떨어지면 분명히 ‘타이틀 방어에 실패한 챔피언’류의 얘기가 나올 것이 뻔하니까요.
이런 마당에 ‘파멸로 가는 길’을 제목으로 택할 리 없겠죠? 보통 외화의 국내 개봉 제목은 영화 수입사에서 짓습니다. 그러나, 몇 달 동안 제목 때문에 끙끙대던 ‘20세기 폭스 코리아’는 결국 제목 공모 이벤트까지 벌였지만 아직도 제목을 찾지 못했다더군요. 이러다가 작명소까지 가지 않을까 모르겠네요.
그런데, ‘20세기 폭스’는 왜 아직도 20세기인 거죠? ^^;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