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주에게 감금당해 화재 현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진 윤락녀들의 유족에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윤락업주뿐만 아니라 이들과 결탁했거나 방치한 공무원의 배상책임까지 인정, 국가에 성매매범죄 및 인권유린 단속 의무를 적극적으로 물은 것이어서 주목된다.
서울지법 민사합의13부(김희태·金熙泰 부장판사)는 4일 ‘군산 윤락가 화재참사 사건’으로 숨진 윤락녀 3명의 유족이 국가와 군산시, 윤락업주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업주들은 유족들에게 총 6억5000여만원의 손해배상금을, 국가는 67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경찰이 윤락업주들의 여성 감금 및 윤락 강요행위를 막고 이들을 체포해야 할 의무를 게을리 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뇌물을 받고 이들의 불법행위를 적극적으로 방치했다”며 “국가는 경찰의 직무상 의무 위반 행위로 인해 여성들이 입은 정신적 피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단속반 공무원들이 윤락가 단속이나 화재시설 점검 등을 소홀히 했다는 점과 화재사건 사망 사이에 충분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군산시와 국가에 대한 나머지 청구는 기각했다.
전북 군산시 대명동 화재참사 대책위원회는 판결에 대해 “국가가 인신매매와 성매매 강요, 착취행위 근절에 나서야 할 책임을 인정했다”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대책위는 “성매매를 강요당해온 10만명 이상의 여성들이 국가에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며 “지방자치단체인 군산시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군산시 대명동 윤락가인 일명 ‘쉬파리 골목’에서 일하던 윤락녀 5명이 2000년 9월 화재 발생시 포주가 업소에 설치해 놓은 쇠창살 때문에 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질식사하자 소송을 냈다.
이 밖에 1월 군산시 개복동 유흥주점 화재사건으로 숨진 윤락녀 13명의 유가족도 국가와 군산시, 포주 등을 상대로 모두 31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재판이 진행 중이다.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