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특성은 자연 지리적인 환경을 바탕으로 하여 역사적인 배경을 갖는다.
비류 백제의 조그만 포구로 시작된 미추홀 인천은 19세기 말 서구 열강들의 동양 진출 야욕에 따라 1883년 강제적으로 근대 개항을 하게 된다. 기독교와 서구식 의료, 서구식 교육제도, 우편과 통신, 철도 등 갖가지 서구 문물들이 인천을 통해 서울로 유입되었다. 그 흔적들이 아직도 내리교회, 답동성당, 성공회 건물, 영화학교, 인천우체국 등으로 남아 있어 100년 전 한국 근대사가 인천에 농축되어 있는 것이다.
개항 후 일본과 청국이 그들의 거류민 전용지역으로 각각 일본지계와 청국지계를 만들었고, 그 이듬해 영국 미국 독일도 자국지계를 만들었다. 그래서 각국 공원이었던 자유공원 일대에 지금도 옛 일본 18은행, 58은행 등의 근대 개항기 건축물이 산재해 있다.
최근 인천시에서 이 지역의 역사적 특성을 감안해 근대 건축물 보전계획을 세우고 이 일대를 관광특구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인천시와 중구가 일관된 정책으로 현재 살고 있는 화교들이나 주민들의 현실을 최대한 고려하고 주민협의체 등을 지원하여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면 주민들의 재산권 제한의 우려를 씻을 수 있을 듯 싶다.
또 과거 우리가 화교들에게 가했던 여러 가지 제약을 생각해보면 개방화와 국제화를 내세우는 이 시점에 우리들의 반성도 필요하다. 대내외적인 여건을 능동적으로 포용하고 소화해 국제적인 문화와 물류가 융합하는 장소로 만들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인천의 다른 지역의 근대건축물에 대해서도 보전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근대 개항에 따른 개화는 어느 면에선 역사의 부정하고 싶은 부분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중구청은 일본영사관이었으며 올림포스호텔은 영국영사관 자리였다. 이들 근대건축물을 서울의 중앙청 건물처럼 허물어버릴 것이냐, 아니면 일제 침략역사관이나 개항박물관 등으로 만들어 교훈을 얻을 것이냐는 우리의 자세에 달려 있다. 허문다고 역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천의 역사적 특성을 자각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다. 과거 인천항에 들어오면 바로 보이던 인천각(6·25전쟁 중에 소실된 존스톤 별장)이 인천의 랜드마크였듯이, 우리의 시선을 모아 줄 중심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한때 맥아더 동상을 인천의 상징으로 말하는 시절도 있었다. 우리의 시선과 결집될 힘의 새로운 중심은 어디인가. 그것은 바로 이번 월드컵 응원으로 몰려들었던 광장이 될 수도 있고, 도시의 움트는 정신이 될 수도 있다. 근대 건축물 보전이 필요한 것은 단지 관광자원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다짐과 새로운 구심적 상징을 위해서인 것이다.
역사는 반복한다. 1세기 전 열강들의 침략으로 문을 열었던 항구가 최근에는 송도신도시 및 인천공항과 더불어 국제비즈니스센터와 물류거점도시를 꿈꾸며 이번에는 자발적인 제2의 개항을 맞고 있다. 이번에 다가오는 역사에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흥우 사단법인 인천해반문화사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