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펑첸 7단과 한국 이세돌 3단(오른쪽)
“이세돌 3단이 돌 던졌어.”(한국기원 기전 담당자 J씨)
“뭐, 에이∼, 농담하지마. 던졌다면 펑첸(彭筌) 7단이 던졌겠지.”(월간 바둑 K기자)“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1일 열린 2002년 비씨카드배 한중 천원전 2국. 그 해 한국과 중국의 신인왕이 ‘두 나라 신예들의 명예’를 놓고 3번기를 겨루는 대회. 대국장은 지난해 10월 서울시가 인수해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 서울 성북구 삼청각의 팔각정인 유하정(幽霞亭)이었다.
오후 2시에 오후 대국을 시작한 지 2분 만에 돌을 던졌기 때문에 ‘혹시 무슨 사고가 난 건 아닌가’하는 생각을 갖고 허겁지겁 대국장으로 달려가보니 정말 두 대국자는 복기를 하고 있었다. 106수 끝 백 불계승.
당시 검토실 기사들은 물론 인터넷 중계 해설자, 심지어 중국 관계자까지 흑을 든 이 3단이 우변에서 묘수를 터뜨리며 대세를 장악해 반면 10집 정도 우세하다고 보고 있었다.
대국자 주변에 둘러선 사람들은 두 기사의 복기보다는 이 3단이 왜 돌을 던졌는지를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누군가 참지 못하고 말문을 열었다.
“이 3단, 왜 던졌어.”
“바둑이 무척 나빠서…. 사실 오전에 던지려고 까지 생각했는데….”
그러자 이번엔 중국 관계자가 펑 7단에게 물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저는 제가 던져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펑 7단은 어깨를 으쓱 들어올렸다. 그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백 △가 돌을 던진 시점. 이후 예상되는 진행은 백 4까지. 이 3단은 백 4 이후 한집도 없는 흑 대마가 몰리게 되면 하변 백집이 커져 흑이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3단의 말을 100% 수긍하더라도 아직은 빈 자리가 많기에 좀 더 끈기있게 버텨볼 만 했다는 것이 검토실 기사들의 중론.
펑 7단조차 중앙의 어느 곳을 두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시간 연장책으로 백 △를 뒀다고 말했다.
복기하는 도중 이 3단에게 여러 질문을 던져봤다. 이 3단도 분명 초반엔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흑대마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그는 2, 3수를 착각했다. 주위에선 그다지 큰 실수처럼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에게 너무 불쾌한 것이었다. ‘바둑 둘 기분이 싹 가실 정도로 예상하지 못했던’ 실수로 인해 그는 자책하고 있었고 형세를 비관하고 있었다.
이 3단은 “아마추어 팬들이 볼 때는 던진 시점이 너무 빨라 의문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다시 검토해봐도 흑이 도저히 승부를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질질 끌려다니며 지느니 차라리 3국을 기약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물론 이 3단이 이긴 줄 알면서도 일부러 돌을 던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패배로 인해 가장 가슴이 아픈 것은 본인이기 때문에. 하지만 누구보다도 강렬하고 질긴 바둑을 두지만 한번 엉크러지면 허무하게 무너지곤 하는 것은 그가 이창호 9단과 같은 반열에 올라서기 위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을 것이다.
서정보기자 su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