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옛 도시들은 한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도시의 가장 좋은 위치에 큰 교회가 있고 그 앞에는 반드시 넓은 광장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유럽인들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단서가 된다. ‘신(神)께 바치는 공간’인 교회가 도심 한가운데 자리잡을 만큼 유럽인의 삶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교회 앞 광장은 예배 후 시민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여론을 형성하는 커뮤니케이션 장소였다. 광장은 정치행사장, 축제, 놀이터 등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이처럼 도시구조 자체가 대중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유럽에서 민주주의가 발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외국 도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에는 으레 광장이 포함된다. 로마에선 베드로대성당 앞 광장과 스페인 광장이 생각나고 런던에는 트래펄가 광장, 뉴욕에는 타임스 스퀘어가 떠오른다. 삭막하다면 삭막한 도시생활이지만 이들 광장은 늘 활기에 넘친다. 그래서 광장은 도시와 인간을 연결해주는 곳이라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이와 비교하면 서울은 내세울 만한 광장이 없다. 여의도 광장이 있긴 했지만 외국의 광장이 도심 한복판에 있는 것과 달리 접근성과 대표성에서 미흡했고 그나마 공원으로 바뀌어 버렸다.
▷서울은 조선 초기 도시계획에 따라 건설된 도시였다. 당시 도시계획이라는 것에는 광장을 만든다는 발상조차 없었다. 왕궁과 종묘의 위치만 확정지은 뒤 나머지 땅에 대충 주거와 상업지역을 배치하는 수준이었다. 절대군주의 시대에 만든 도시이므로 시민 광장은 처음부터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월드컵이 끝난 뒤 문화계 일각에서 서울 도심에 광장다운 광장을 조성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월드컵 동안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은 찻길을 막고 군색한 자세로 응원해야 했다. 우리도 대중이 모여 여유롭게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땅값 비싸고 비좁은 도심에 광장을 조성하기란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문화계의 이번 제안과는 별개로 이명박 신임 서울시장이 시청 앞에 차가 다니지 않는 광장을 조성하겠다고 밝혔으나 당장 교통문제가 걸림돌로 떠올랐다. 광장이 도시인들에게 가져다줄 긍정적 효과와 교통체증에 따른 부정적 효과 중 선택은 시민이 해야 한다. 그렇다고 일찍부터 광장을 확보해 놓지 않은 선조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한가지 좋은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시대로 세상이 바뀐 것을 어찌하랴.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