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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김병지 “명예회복 하기전엔 그라운드 못떠나”

입력 | 2002-07-07 16:26:00


“제가 누구입니까. 연습생부터 시작했지 않았습니까. 김병지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꼭 보여줄겁니다.”

김병지(32·포항 스틸러스). 한국 최고의 골키퍼로 이름을 떨치던 그였지만 한국축구가 2002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룰 땐 완전히 ‘잊혀진 인물’이었다. 98프랑스월드컵에서는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지만 이번엔 단 한번도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저 벤치만 지키고 있었다. 대표팀 해단식이 있던 5일 서울 타워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나도 선수이기전에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프로와 대표생활을 하면서 이같이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것은 처음입니다. 사람이다보니까 이기적인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좋은 일도 많았어요. 한마디로 한달동안 많이 울고 웃었습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이운재(수원 삼성)가 ‘거미손’으로 불릴 정도로 우뚝섰다.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는 천금같은 방어로 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다. 준결승까지 단 3골만을 내줬다. 승부욕이 강한 김병지로서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폴란드와의 첫 경기가 있던날 오전 내가 스타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어요. 감독님은 컨디션에 따라 선택했다고 말하며 미국과의 2차전엔 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폴란드전이 끝난 뒤 다시 컨디션을 체크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몸상태가 아주 좋았는데…. 그때 앞으론 내가 게임에 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김병지는 모든 것을 인정했다. 김현태 골키퍼 코치가 “월드컵 일주일 전부터 운재의 컨디션이 조금 더 좋았다”며 스타팅 결정 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스타팅 라인업이 컨디션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죠. 히딩크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 잘못이지요. 내가 아니라도 그 자리는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좋았잖아요. 더 할 말이 없는거죠.”

”아 역시 김병지구나 하는 말이 나오도록 할 겁니다.” 김병지가 월드컵기간 중 마음고생과 이후 각오를 담담하게 털어놓으며 찻잔을 들고 있다. [사진=신석교기자] 그렇다면 김병지가 히딩크 감독의 신뢰를 얻지 못한 이유는 뭘까. 지난해 1월 홍콩칼스버그컵 파라과이전에서 볼을 몰고 미드필드까지 나오다 볼을 뺏겨 위기를 맞은 것 때문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내 실수를 인정했고, 그래서 K리그에서 좋은 모습 보이려 노력했어요. 그러나 10개월동안 대표팀에 합류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 말 FA컵울산 현대전에서 내가 PK를 두 개나 막아내고 우리팀이 이겼는데 히딩크 감독은 ‘차는 선수가 실수한 것’이라며 무시했다더군요. 한마디로 할 말을 잃었어요. 그때 솔직히 히딩크 감독을 원망했어요. 한번의 실수로 전체를 평가하는 사람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그때 한 마음고생은 말로 다 표현 못합니다.”

히딩크 감독은 그를 11월에 다시 대표팀에 합류시켰다. 그리고 각종 평가전때 교대로 스타팅으로 투입하며 경쟁을 시켰다.

“일단은 한게임 한게임 돌아가면서 뛴다는 사실 자체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그러나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나간 일을 잊어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수 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열심히 노력했어요. 내 스타일을 완전히 버리고 히딩크 감독에게 맞추려고 노력했는데….”

그는 히딩크 감독에게 실망한 눈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는 히딩크 감독을 비난하지 않았다.

“히딩크 감독은 인간적으로 선수들을 존중해주죠. 매우 영리한 분입니다. 선수들을 심리적으로 컨트롤하면서 경쟁을 유도시키면서도 잘 따라오도록 만들었어요. 언론과 선수와의 관계도 잘 유지시켜줬습니다.”

김병지는 벤치에 있으면서도 그 누구 못지 않게 한국의 승리에 기뻐했다. 이탈리아와 16강전에서 안정환이 골을 넣자 가장 먼저 달려가 포옹했다.

“단순히 이겼다는 것보다 (안)정환이가 그동안 큰 고생을 했는데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 더 기뻤어요. 뛰기 전에 내가 골을 꼭 넣으라 했습니다. 그런데 시작하지 마자 페널티킥을 실축했어요. 만일 정환이가 골든골을 못넣었다면 이탈리아에서 뭐라 생각했겠어요. 정환이와 한국의 자존심을 지켜준 한방이었습니다.”

이운재가 스페인전때 승부차기에서 골을 막아냈을 때도 그렇게 기뻐했을까.

“잘했다고 등을 두드려주긴 했지만 나는 어느 누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역시 승부욕이 넘쳤다. 김병지는 자존심 회복을 하기전엔 그라운드에서 떠날 수 없다고 이를 악물었다.

“이번 월드컵은 내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잃은 것도 있고 얻은 것도 있어요. 물론 너무 큰 것을 잃었다는 생각입니다. 이제 진가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은 K리그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보여줬던 모습이 하루 아침에 없어지겠습니까. 실력을 보여줄 겁니다. ‘아 역시 김병지구나’하는 말이 나오도록 할 겁니다. 현재 프로에서 248경기를 뛰었는데 500경기를 채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대표팀에 대한 욕심도 버리지 않았다. “명예회복을 하기전에 태극마크를 반납할 수 없어요. 2006년이면 올해 출전했던 파라과이의 칠라베르트와 독일의 칸 정도의 나이입니다. 아직 시간은 있어요. 그러나 (황)선홍이형 (홍)명보형이 보여준 아름다운 퇴장도 잊지는 않겠습니다.”

김병지는 월드컵 기간인 6월28일 둘째 아들을 봤다. 이름은 산(山)으로 지었다. 첫째 태백에 이어 그는 둘째 아들도 축구선수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가 명예를 회복해야 할 또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김병지는 누구

△생년월일〓1970년 4월8일

△출생지〓경남 밀양

△체격〓1m84, 77㎏

△출신학교〓마산공고(2학년까지)-알로이시오기계공업학교

△소속팀〓울산현대-포항스틸러스

△A매치 기록〓60경기 출전 72실점

△프로축구 통산기록〓248경기 출전 264실점 3득점

△취미〓스키

△가족사항〓아내 김수연(29) 2남(태백, 산)

△사회활동〓방정환어린이재단, SOS어린이마을, 장기기증운동본부 등에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