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신화’ 때문에 히딩크의 조국 네덜란드가 갑자기 친근해진 듯하다.
네덜란드는 어떤 나라인가. 세계에서 가장 폭넓게 인간의 자유가 보장된 곳으로 꼽힌다. 또 허례와 명분보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추구하는 나라이다.
과거에도 그랬다. 종교개혁 이후 유럽 각지에서 피비린내 나는 종교 탄압이 벌어질 때 이곳에서는 종교적 관용이 베풀어져 많은 신교도들이 몰려들었다. 또 상거래 자유가 보장돼 유럽 최대의 직물산업 중심지로 떠올라 막대한 부(富)를 축적하기도 했다.
이런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개인은 다른 곳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의 풍성한 자유를 누린다. 예를 들자면 네덜란드에서는 가벼운 수준의 마약을 약국이나 담배 가게에서 살 수 있다. 아무리 단속해 봐야 어차피 중독자들은 밀매할 터이니 암거래를 통한 범죄 등을 막기 위해서는 오히려 저단위 마약의 판매를 허용하는 게 낫다는 판단 때문이다. 자유와 실용정신이 구현된 정책이다.
안락사를 맨 먼저 허용한 나라도 네덜란드다. 그렇다고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곳이 아니다. 그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다 보니 ‘도저히 소생할 수 없다고 본인과 가족, 의사가 결론을 내린 사람조차 억지로 연명시키는 것이 반(反)인간적’이라 생각한 것이다.
동성연애자들의 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한 몇몇 나라 가운데 네덜란드도 끼어 있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로 망명하는 다른 나라의 동성연애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네덜란드인들은 유럽인 가운데 외국어를 가장 잘 구사한다. 네덜란드 국민 가운데 73%가 적어도 2개 언어를 할 줄 알아 벨기에 48%, 독일 34%, 프랑스 33% 등에 비해 월등히 많다. 3개 언어를 구사하는 비율도 네덜란드 44%, 벨기에 26%, 독일 7% 등으로 큰 차가 난다. 히딩크 감독은 5, 6개 언어를 구사한다고 한다. 외국어에 능통하다는 것은 그만큼 대외개방적이라는 뜻이다.
네덜란드와 비교할 때 한국에서는 자유란 공기를 호흡하기엔 여전히 숨이 답답하다. 꿈쩍도 않을 만큼 뿌리깊은 정부 규제, 개인의 발랄한 창의성을 짓누르는 권위주의적인 사회 분위기, 상공업 종사자에 대해 가지는 편견과 관존민비(官尊民卑), 명분 때문에 표류하는 교육제도 등 ‘열린 사회’를 위해 고쳐야 할 과제들이 수두룩하다.
비상장 기업을 증권거래소나 코스닥시장에 상장 또는 등록하려면 진이 빠진다고 한다. 증권 당국에 내야 할 서류가 엄청나게 많고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오라 가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미자격 기업이 장난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절차가 필요 이상으로 복잡해 대다수의 건전한 기업에도 족쇄가 되고 있다.
최근 어느 공직자가 가족이 관리하던 장학기금을 바탕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설립 과정에 하도 여러 관련 부처가 걸려 있고 이 서류, 저 서류를 내라고 하는 바람에 혼쭐이 났다. 그는 “좋은 사업을 하려는데 왜 이리 거추장스러운 절차가 많은지 몸서리쳤다. 현직 공무원인 내가 이럴 정도인데 민간인은 오죽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히딩크 신화가 축구에서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인의 자유정신이 한국에서 확장되는 데도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고승철 경제부장 che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