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론 사태에 이어 월드컴 스캔들이 월가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미 의회가 8일 월드컴의 전현직 고위경영자들을 소환,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를 개최한다.
월드컴 사태 이후 월가 개혁을 주창해온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도 9일 뉴욕에서 내부자 거래 방지를 위한 주식매매 즉각 공표 등 기업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89년 하켄에너지 주가가 폭락하기 직전 소유주식을 매각한 뒤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이를 늑장 보고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월드컴 파장과 충격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친(親) 기업성향이 또다시 여론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6일 사설을 통해 부시행정부 내 엔론 인맥을 ‘마피아 커넥션’에 비유하며 “부시의 월가 개혁안은 알맹이 없는 수사일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다음은 사설 요약.
엔론, 아서 앤더슨, 메릴린치, 할리버튼(에너지회사), KMPG(회계법인). ‘미 주식회사’의 붕괴를 몰고 온 장본인이자 부시 행정부와 직간접적인 연을 맺어온 기업들이다. 부시 대통령에 의해 ‘월가 개혁의 리더’로 임명된 SEC의 하비 피트 위원장은 어스트&영 회계법인 출신으로 당시 앤더슨, KMPG, 메릴린치사는 그의 고객이었다.
피트씨는 위원장 신분으로 KMPG와 제록스사가 SEC의 조사를 받고 있는 도중 이 회사 임원진과 별도로 만났다. 피트 위원장에게 월가의 개혁을 맡기는 것은 마피아에게 연방수사국(FBI)을 맡기는 것과 같다.
그뿐만 아니다. 엔론사가 5억달러의 손실을 은닉하고 캘리포니아 에너지 위기를 악화시키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 엔론 에너지 서비스 부사장을 역임했던 토머스 화이트는 현재 부시의 최측근으로 일하고 있다. 현 백악관 법률 고문인 알베르토 곤살레스도 과거 엔론사 담당 변호사였다.
LA타임스는 엔론과 부시 가문의 유착관계가 88년부터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엔론은 ‘부시 왕가(王家)’의 후광과 부패한 정치 시스템을 이용, 급성장한 기업이다. 채 밝혀지지 않은 ‘엔론 폭탄’들이 또 언제 어디서 터져 나올지 모른다.
이제 부시 대통령에게 남은 것은 두 가지 선택뿐이다. 자신의 친인척을 주요 요직에 임명해 그들이 사리사욕을 채우도록 방관하다 미국 최악의 대통령으로 전락한 워런 하딩(1921∼1923)의 전례를 밟거나 적극적인 개혁에 몸소 나서는 것이다.
이제 내용 없는 화려한 미사여구의 연설은 그만둘 때다. 부시 대통령이 행동을 통해 변화하지 않는 한 월가에 대한 얼어붙은 투자자들의 심리는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