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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 ‘직원 서비스 감찰’ 어사 출두요!

입력 | 2002-07-08 18:33:00



지난달 말 수원에 특명출장을 갔다. 할인매장인 이마트 수원점의 한 귀퉁이에 차려진 삼성카드 발급소를 찾아간 조 주임은 짐짓 “신용카드를 발급받고 싶은데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았다”며 모집인의 반응을 살폈다.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은 채 카드를 발급하는 불법행위가 있는지 직접 확인하라는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삼성카드는 6월말부터 전체 직원의 절반가량인 1000여명을 ‘암행어사’ 자격으로 전국 영업점에 보내 영업직원의 규칙 준수 및 서비스 상태를 확인시켰다.

▽고객 만족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하나은행 고객만족(CS)팀은 신용정보회사인 한국신용정보와 계약하고 매달 지점 창구나 콜센터 직원의 친절도를 평가하고 있다. 평가요원이 하나은행에 전화를 걸어 “전업주부인데 1000만원 대출을 받고 싶다”고 물으면 은행 담당자는 필요한 서류 및 절차를 매뉴얼대로 정확히 설명해야 한다. “일단 지점에 나와 보라”는 것은 최악의 답변이다.

전화를 끊을 때도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라는 식으로 끝인사를 두 마디 이상 해야 한다. “감사합니다”처럼 짧은 인사로는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고객만족도가 곧 경쟁력인 백화점에서는 직무감찰 경쟁이 치열하다.

모니터 요원인 김현조씨는 올 5월 롯데백화점 일산점을 찾아 지하 2층부터 6층까지 32개 매장을 둘러봤다. 진짜 손님으로 보이기 위해 물건들을 실제로 샀다. 이 물건은 얼마 후 전부 환불했다. 환불과정은 꼼꼼히 기록했다. 이처럼 매장 1곳을 10분가량 관찰하고 나면 화장실이나 근처 은행으로 가 평가보고서에 기록한다.

신세계백화점은 매장뿐만 아니라 지원 부서의 전화응대도 점검한다. 모니터 요원이 “대학생 아르바이트 채용 계획이 없느냐”고 전화로 물으면 인사부 직원은 매장 손님에게 답변하듯이 친절하게 안내해야 한다. 직무감찰을 주관하는 CS부서가 모니터 요원의 평가 대상이 되기도 한다.

평가요원은 종업원을 ‘자극’하도록 교육받는다. 백화점에서 억지로 반품도 해 보고, “상품권으로 1만원어치만 사겠다”고 요구해 종업원을 어이없게 만든 뒤 반응을 살피기도 한다.

자극기법의 극치는 국내 초특급 호텔이 “투숙객을 가장해 룸서비스를 트집잡고, 객실 기물을 파손해 달라”며 조사 회사에 의뢰한 사례. 조사를 맡았던 한국리서치의 이상권 이사는 “비상 상황에 직원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호텔 측은 알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내 돈 들여 경쟁사 조사까지〓롯데백화점은 3년 전부터 서울 본점 잠실점 등 전국의 15개 매장을 평가하면서 현대 신세계 등 경쟁 백화점의 서비스 수준도 빼놓지 않고 점검했다. 신헌 상무는 “15개 매장을 경쟁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별 1등 백화점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면 경쟁 백화점과의 비교는 필수”라고 말했다. 평가 결과는 비교 공시(公示)된다. 롯데백화점 측은 “롯데백화점 평균보다 낮아도 곤란하지만 경쟁사보다 뒤떨어지면 불호령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KTF도 경쟁사인 SK텔레콤 대리점을 동일 기준으로 함께 평가한다. 하나은행은 지점별 주요 경쟁상대인 다른 은행 지점 한 곳과 비교평가한다.

▽물고 물리는 두뇌싸움〓물론 종업원들도 암행감사에 속수무책인 것은 아니다. 일반인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내용을 질문받는 순간 ‘모니터 요원이구나’ 하고 눈치채고 200% 서비스를 제공한다.

KTF 대리점에 대한 조사를 기획한 한국리서치는 “휴대전화 가격 등을 물을 땐 평상시와 다름없던 대리점 사장이 ‘월 5000원짜리 단말기 분실보험료’ 이야기를 꺼냈더니 친절한 표정을 짓더라”고 회고했다. 서울 강남지역 KFT 대리점에 들렀더니 게시판에 ‘청바지를 입고 모자를 쓴 감시원이 떴다’는 내용이 적혀 있기도 했다.

조사 업계에선 고객 회사 요청대로 차례차례 질문하면 조사 대상자가 ‘눈치챌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는 게 정설.

▽피곤한 평가?〓회사 측은 “암행조사의 목적은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잘하는지 숫자로 확인하고, 직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누가 어떻게 잘못하는지를 따지고 문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백화점 점장(店長)들은 평가 결과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직원들의 반응은 반반으로 갈린다. 여름 세일을 맞은 7일 서울 강남권 백화점에서 만난 한 점원은 “특히 손님이 많은 세일 기간에는 하루종일 미소짓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편안하게 손님을 맞다가도 ‘혹 모니터 요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어색해진다”고 전했다.

이 백화점은 올해부터 직원들의 부담을 고려해 월 1회 하던 조사를 분기별 1회로 축소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그래도 조사하고 교육받으니 서비스 질은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뤘다.김승련기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