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韓相範)가 9일 대법원이 이적단체로 규정한 한총련의 간부를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숨진 것으로 인정하고 국가기관으로서 국가보안법의 개정 및 폐지를 건의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진상규명위는 이날 1997년 광주 북구 오치동 친구의 아파트에서 경찰의 추적을 피해 달아나다 떨어져 숨진 한총련 투쟁국장 김준배(金準培·당시 27세)씨가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숨진 것으로 인정했다.
규명위는 “김씨가 5, 6공 군부독재 잔재 청산과 노동법 등의 날치기 통과 규탄, 한보비리 진상 규명 등을 주장한 것은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저항이므로 민주화 운동과 관련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당시 경찰관의 프락치 공작 및 검거 당시 아파트에서 떨어진 김씨를 경찰들이 폭행한 점 등 위법한 공권력이 직간접적으로 개입돼 숨진 것으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규명위는 이에 따라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에 김씨 및 그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를 요청했으며 조사 결과 김씨를 구타한 것으로 드러난 이모 경장을 폭행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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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위원장은 “구시대 청산을 미진하게 해 형식적 법질서와 실질적 정의가 충돌하는 경우 실질적 정의구현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박찬철(朴讚澈)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대변인은 “이번 결정은 지난번 민주화보상심의위가 동아대 사태 관련 학생들을 민주화 운동자로 인정한 것과 같은 실수”라며 “국가기관이 이적단체로 인정한 것을 다른 국가기관이 뒤집는다면 국가의 계통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모순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규명위는 국보법과 관련해 “냉전질서의 산물이며 권위주의 통치에 악용되어 왔다”면서 “국보법을 국제 인권기준에 맞도록 신속하게 개정 내지 폐지(대체입법 포함)할 것”을 정부와 국회에 권고했다.
이에 대해 안경환(安京煥) 서울대 법대학장은 “규명위는 한시적이고 특수목적을 띤 국가기관이므로 의문사와 관련한 업무의 특정 범위 내에서 권고 형식의 의견을 표시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며 “이번 결정은 당시 국가 공권력이 얼마나 엄혹했는지에 대한 시대적 반성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혜식(申惠植) 민주참여네티즌 대표는 “규명위가 과연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며 “서해교전 사태에서 보듯 안보를 등한시하면서 안보의 보루인 국보법을 폐지하라고 국가기관이 권고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