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이룩한 ‘태극 전사’들은 프로축구 K리그 경기장에도 ‘오빠 부대’ ‘아줌마 부대’를 몰고 다닐 정도가 됐다. 하지만 프로축구에 오빠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든든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저씨같은 맏형도 있다.
울산 현대의 ‘가물치’ 김현석(35)은 프로축구의 버팀목 같은 선수다. 정규리그 개막 전까지 통산 최다인 107골을 넣은 김현석은 1골을 넣을 때마다 프로축구의 역사를 다시 쓰는 기록의 사나이다. 김현석은 현재 프로축구에서 활약하는 선수 중 안양 LG의 신의손(42)에 이어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 필드 플레이어로서는 최고령이다.
“우리팀에는 저보다 15년 어린 선수도 있어요. 고재욱 전 감독님과 제가 14년 차이였으니까 그들에게는 형이 아니라 ‘선생님’ 뻘이죠.”
스스로 머쓱해할 만큼 나이가 들었어도 뛰는 데는 문제가 없다. 김현석은 “체력에 자신이 있으니까 계속 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현석은 7일 개막전에서 ‘봉변’을 당했다. 부산 아이콘스의 송종국이 찬 슈팅을 머리에 맞고는 2분여간 실신했다. 김현석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리를 갖다 댔는 데 그 다음엔 온통 세상이 까맣게 변했다”고 회상했다. 그 만큼 투지도 젊은 후배들 못지 않다.
그렇지만 세월을 견디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스피드가 줄어 지난해 겨울 훈련부터 최전방 공격수에서 최종 수비수로 자리를 바꿨다. 김정남 감독은 그의 풍부한 경험과 통솔력, 그리고 탁월한 패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로 그라운드 후방을 배정했다.
스트라이커에서 스위퍼로 변신했던 김주성이나 월드컵에 공격형 미드필더와 스위퍼로 자리를 옮겨 출전한 독일의 로타 마테우스와 같은 경우다.
사실 김현석의 포지션은 스위퍼라기보다는 리베로에 가깝다. 최종 수비수로 사명감을 갖고 상대를 막고 있지만 기회만 생기면 공격에 가담한다. 여전히 골 욕심이 많은 데다 상대의 틈을 찾는 넓은 시야와 기량도 그를 최후방에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프리킥, 페널티킥도 그의 전담이다. 올해 아디다스컵 10경기에서 3골을 넣었으니 웬만한 공격수를 능가하는 득점력이다. 김현석은 올해 10골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은퇴하기 전까지는 기어이 120골을 채우고 말겠다는 결심이다. 스스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월드컵 이후 프로축구에 관중이 몰리자 노장 김현석은 절로 힘이 솟는다. 김현석은 “후배들이 잘 해준 덕에 축구에도 기회가 왔다”며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모든 선수들이 재미있는 경기를 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고 맏형다운 각오를 밝혔다.
수원〓주성원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