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있을 힘만 있으면 바캉스를 떠난다.’
프랑스인에게 바캉스는 알파요, 오메가이며 삶의 전부다. 평생을 이런 ‘바캉스 문화’에 젖어 살아온 노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인구 6000만명 중 21%에 달하는 60세 이상 노인 가구의 절반 이상이 바캉스를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파리의 스포츠용품 판매점인 데카슬롱(Dacathlon)에 가면 손을 맞잡고 바캉스 용품을 구입하는 노인 부부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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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행사의 해외 패키지투어 참가자도 노년층이 대부분. 60세에 정년퇴직을 하면 최고 마지막 월급의 80% 수준까지 매달 노후연금을 받는 프랑스에선 노인들의 주머니가 청장년층보다 두둑한 편이다. 독자적인 휴가는 상상할 수 없고 기껏해야 자식들에게 얹혀 휴가를 떠나는 게 보통인 한국 노인층의 현실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볕이 잘 들수록 그늘도 짙은 법. 배우자를 떠나 보내고 홀로된 노인, 특히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바캉스 시즌은 일년 중 가장 괴로운 때다.
프랑스 언론들은 최근 가족들이 바캉스를 떠나면서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병원이나 요양원 등에 방기(放棄) 또는 방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병이 없더라도 오갈 데 없는 노인으로 판단될 경우 단기간 입원시켜주는 프랑스의 의료 시스템을 악용, 병원 응급실에 노인을 버리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
2월 프랑스 보건부 발표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인 인구의 6.6%인 80여만명이 신체적 자립능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노인들을 버리는 가족을 이해하는 시각 또한 프랑스적이다. 전문가들 가운데는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보살피기 위해) 1년 중 11개월을 고생하다 바캉스를 떠나는 가족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노인전문병원에 병상을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상황에서 병원에 노인을 버리는 행위는 서민들이 택할 수 있는 그나마 덜 위험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시민단체도 있다. ‘노인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프랑스지만 ‘천국’에서 지낼 수 있는 노인은 건강한 노인에 국한되는 걸까. phark@donga.com
박제균 / 파리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