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張裳) 전 이화여대 총장이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국무총리서리에 임명된 것은 한국정치의 오랜 남성주의 벽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여성 총리’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정치 사회적 비중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여성 총리의 상징성만으로 7·11 개각을 평가할 수는 없다. 그 실질적 내용을 본다면 이번 개각은 ‘기대 이하’의 평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장 총리서리 임명으로 탈(脫)정치의 중립내각 성격을 강화했다고는 하나 법무 국방 문화관광 등 새로 임명된 주요 국무위원들의 면면은 한결같이 ‘DJ 사람들’이다. 자기 사람만 선호하는 ‘DJ식 인사’가 되풀이돼서는 진정한 중립내각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송정호(宋正鎬) 전 법무장관은 어제 이임사를 통해 권력이 검찰권에 관여하려는 데 대한 불만을 피력함으로써 대통령 아들 수사와 관련해 ‘청와대 압박’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태복(李泰馥)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자신의 전격 경질은 ‘보험약가정책에 대한 제약사의 압력’ 때문이라고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했다. 이번 개각이 과연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었는지조차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행여 ‘첫 여성 총리’라는 ‘깜짝 쇼’로 이런 석연치 않은 상황까지 포장하려 해서는 결코 민심이 수습될 리 없다.
하물며 개각으로 국정을 농단하고 수십억원의 사익(私益)을 챙긴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를 감출 수는 없는 일이다. 분노한 여론을 무마할 수도 없다. 민심을 달래려 한다면 최소한 대통령 아들에게 ‘떡값’을 준 전현(前現) 국정원장에 대해 책임을 묻는 조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국민이 김대중(金大中) 정권에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 권력 비리의 오점을 임기 내에 깨끗이 털어 내라는 것이다. 그 일을 하지 않고는 내각을 어떻게 바꾸든 떠난 민심을 돌아오게 할 수 없다. ‘장상 내각’의 성패도 거기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