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프로축구 최고 인기 스타로 떠오른 ‘진공 청소기’ 김남일(오른쪽)이 7일 소속팀 전남 드래곤즈의 정규리그 개막전 광양 홈경기때 그라운드에 나와 열광하는 팬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김남일이 ‘김남일 열풍’에 시달리고 있다. 발목 부상 치료를 위해 10일 안양 LG와의 홈경기 이후 외부와의 연락을 일체 끊고 일산 모 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하던 그가 12일 몰려든 소녀팬들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또 다른 개인 병원으로 잠적(?)했다.
월드컵후 지금까지 나타난 김남일의 인기는 98년 프랑스월드컵 직후 이동국 고종수 안정환 등 이른바 신세대 3총사가 주도한 오빠부대 열풍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그의 소속팀인 전남 드래곤즈 구단은 월드컵 이후 끊임없이 울려대는 인터뷰 요청 전화에 일상 업무가 마비됐다며 하소연하고 있고 7일 홈 개막전 사인회때는 전국에서 몰려든 소녀팬의 극성 때문에 30명의 특별 경호팀까지 동원됐다. 인천 김남일의 집 앞도 그의 얼굴을 보려는 팬이 진을 치고 있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 ‘야후’에 뜨는 김남일 관련 홈페이지만도 75개나 된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손정섭씨는 ‘아름다운 터프가이 김남일’이란 책을 최근 펴내기도 했다. 손씨는 이 책에서 김남일을 ‘돌아온 헝그리 정신’으로 표현했다. “그의 지난 청춘기에는 공사장으로 웨이터로 넘나드는 지난 시대의 뭉클한 헝그리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렇지만 정신력과 투혼만으로는 김남일이 최고의 인기 스타로 부상한 이유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팀 워크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은 희생정신, 지네딘 지단의 무릎 부상 치료비를 “내 월급에서 까라”고 말하는 당당함, 페널티킥을 실축한 이을용에 대해 “때려주고 싶다”고 말하는 솔직함이 월드컵 기간 모두가 하나되어 전국 주요 길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악마 응원단의 정서와 맞아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김남일의 이런 깜짝 인기는 월드컵전 그 어느 누구도 예상못한 일. 김남일은 올림픽대표팀때 이미 주전을 굳혔으나 잦은 백패스와 실수로 확실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월드컵대표팀에도 지난해 8월 유럽전지 훈련때 해외파의 합류가 늦어지면서 추가 발탁 됐다.
하지만 김남일에게 모처럼 안겨진 기회는 악몽이었다. 한국이 0-1로 뒤지던 체코전 후반 20분경 우리 골문을 향해 드리블하다 인터셉트 당해 어이없는 실점을 허용, 한국 0-5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다. 김남일은 다음달 수원 삼성과의 프로축구 홈경기에서도 똑같은 장면을 연출하며 이기형에게 실점을 허용, 팀 패배를 자초했다. 이때만해도 김남일을 월드컵 대표팀에 합류시켜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축구팬 사이에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김남일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투지와 노력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해냈다. 올 2월 미국 전지훈련도중 감기 기운으로 휴식을 취하라는 코칭 스태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백사장 달리기에 나섰다가 드러누웠던 일화는 그 대표적인 예.
김남일은 화려하지 않다. 성격은 물론 플레이 스타일도 투박하다. 10대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던 대중 스타와는 한참 동떨어진 성격이다. 오히려 그는 기성 세대의 취향에 맞을지도 모른다. 최근 온라인 채용정보 업체 잡코리아(www.jobkorea.co.kr)가 1013개 기업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김남일이 기업이 가장 선호하는 인재형 1위(26.55%)에 오른 것도 궂은 역할을 도맡아 하는 그의 성실한 성격 때문이었다. 김남일의 급부상은 오빠부대로 대변되는 신세대들의 의식 지도를 뿌리째 뒤바꾸고 있는 셈이다.
김남일의 마지막 매력은 인기의 거품에 취하지 않고 스스로를 관리할 줄 안다는 점이다. 그라운드에 다시 설때까지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킨 것도 자신의 좌표를 정확히 알고있기 때문이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김남일의 말말말▼
▽치료비를 내 월급에서 까라고 하세요(프랑스대표팀 간판 스타 지네딘 지단이 월드컵전 한국과의 평가전때 김남일의 태클 때문에 부상을 당했다는 말에)
▽한 대 때려주고 싶던데요(지난달 10일 월드컵 미국전에서 이을용이 페널티킥을 실축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고 묻자)
▽수표를 처음 받고 2억9000만원이 아닌 29만원인 줄 알았어요(8일 모교인 한양대 동문회가 마련한 축하행사에서 포상금은 어떻게 쓸 거냐고 묻자 처음으로 큰 돈을 받아 당황하고 긴장이 됐다며 아버지와 상의해 집을 살 것인지 등을 정하겠다며).
▽나이트에 가고 싶은 남자 김남일입니다(2일 월드컵 성공기원 국민대축제때 자신을 소개하며)
▽공부해야 하는데 걱정스럽습니다(10일 프로축구 전남 드래곤즈의 광양 홈경기가 끝난후 인터뷰에서 소녀팬들의 성화가 기분 좋지만 그들이 한창 공부해야할 때인데 부담스럽다며)
▽그 정도는 컨트롤할 수 있어요(같은날 인터뷰에서 갑작스런 인기로 주위 분들의 걱정이 많지만 문제 없다며)
▼김남일은?▼
△생년월일〓77년 3월14일
△체격〓1m80,75kg
△포지션〓수비형 미드필더
△소속팀〓전남 드래곤즈(2000년 입단)
△출신교〓부평초-부평동중-부평고-한양대
△A매치 기록〓23경기 1득점(2001년 11월10일 크로아티아전)
△별명〓진공청소기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