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옥션대표·경매사
최근 우리나라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가들의 역할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의 막강한 자금력, 정보력, 그리고 우리보다 한 수 앞선 투자기법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좌지우지한다. 일부에서는 돈을 벌려면 외국인 투자가의 매매를 주시하고 이를 따라야 한다는 얘기도 한다. 무슨 미술시장 얘기에 뜬금없이 외국인 투자가냐고 의문을 제기할 독자가 계시리라고 본다.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시장의 1호 외국인 투자가는 누가 뭐래도 박수근 선생 그림의 최대 개인 소장자였던 마거릿 밀러(Margaret Miller) 여사다.
박수근 선생의 작품은 한 때 국전에서조차 낙선(1957년)을 하는 수모를 겪었고 선생은 이때의 충격과 비탄으로 음주가 심해지면서 그의 명을 재촉하였다(1965년에 51세로 타계).
이런 국내 미술계의 냉대속에 선생의 작품은 당시 반도호텔에서 작은 화랑을 운영하고 있었던 미국인 여성 셀리아 지머먼(Celia Zimmerman)과 또 다른 미국인 여성 마거릿 밀러 여사 등 주로 외국인 애호가들에게 가장 한국적인 소재와 정서 및 특이한 조형기법으로 높게 평가받으며 많이 팔리고 있었다.
선생은 1962년에 오산 주한 미공군사령부(USAFK) 도서관에서 ‘박수근 특별 초대전’을 가진 외에 1965년 작고할 때까지 단 한번도 개인전을 갖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소외된 작가였다.
마거릿 밀러 여사는 박수근 선생의 열렬한 후원자로 선생의 집안 대소사에까지 세심하게 지원을 해 주었고 미국에 돌아가서도 끊임없이 선생의 작품을 사주고 주위에 팔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여러 미술 저널에 선생을 소개하고 전시에 출품하게 해 주었으며 선생이 작고하고 나서도 선생의 부인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며 힘이 돼주었다.
60년대 초에 여사가 40∼50달러에 샀던 작품이 작년 9월 서울옥션의 미술품 경매에서 5억 원에 팔렸고, 올해 3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원화 약 7억5천만원에 팔렸으니 격세지감이 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알려지고 평가받은 대표적인 한국의 작고 또는 원로 작가들로는 박수근 선생 외에 백남준, 이우환 선생 등이 있으며 이외에 몇몇 젊은 작가들이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작품 값이 많이 오르고 있는 이우환 선생은 한국인으로서 일본 현대회화의 이론적인 지주 역할을 하면서 일본 화단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작년 9월에는 일본 미술협회가 주관하는 세계적 권위의 제13회 세계 문화상의 회화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선생의 작품은 국내에서 작품 값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부터 이미 일본이나 독일 등 선진국 주요 미술관들의 컬렉션 대상이었던 것이다.
증시와 마찬가지로 미술시장 역시 글로벌화와 더불어 점점 외국인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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