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제약사들의 로비로 경질됐다”는 이태복(李泰馥) 전 보건복지부장관의 발언에 따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는 사실무근임을 강조하고 나섰고, 정부 일각에서는 무리한 정책수행과 인사 잡음이 경질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전 장관의 퇴임배경에 대한 논란보다 그가 퇴임사에서 언급한 제약업계 로비문제에 더 주목한다. 다국적 제약사들의 로비는 국민에게 터무니없이 무거운 약값을 부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전 장관은 취임이후 특허기간이 만료된 오리지널약품 재평가제도를 도입해 2, 3년 단위로 약값을 인하하는 정책을 추진해왔고 이 때문에 오리지널약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다국적제약사들의 반발을 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장관은 이와 관련해 미국 대사와 무역대표부 관리들의 방문을 받았고 제약업계로부터 협박전화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로비 개연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2000년 7월 의약분업이 실시된 후 건강보험 재정과 환자들이 부담한 약값은 실시 전에 비해 25%나 늘었다. 국민의 추가부담만큼 특정 제약회사들의 이익이 증가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다국적제약사는 지난해 의약품 시장의 20%를 점유했고 올해엔 30%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미 시장 장악을 위해 이들이 의료기관에 각종 ‘편의’를 제공해온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 은밀한 거래에 따른 비용은 모두 약값에 전가되었을 것이고 결국 건보재정의 악화로 이어졌을 공산이 크다.
청와대는 약가정책과 관련해 그동안 제약업계로부터 압력이 있었는지 여부를 밝히고 만약 있었다면 그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는 이번 장관 경질 사태가 그동안 추진해온 약가 인하정책이 흐지부지되는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리지널약품과 동일한 성분의 카피약품 보험약가가 최고 23배까지 차이나는 부조리를 바로잡지 않으면 건보재정 건실화는 이룰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