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언제 오실까' - 차준호기자
전북 익산시에 살고 있는 올해 6세난 민국이는 요즘들어 부쩍 풀이 죽어 있다.
오전 9시에 동네 놀이방에 가 오후 5시에 돌아오지만 또래 친구들이 민국이의 부리부리한 눈과 거무스름한 피부 등 자신들과는 다른 외모에 따돌리는 눈치이기 때문이다. 민국이는 일을 마친 엄마가 돌아오는 한밤중이 돼서야 비로소 얼굴에 웃음이 감돈다.
민국이는 이른바 ‘코시안’(KOSIAN). 엄마는 한국 사람이지만 아빠는 방글라데시인이다. 태어나기 직전 아빠가 ‘불법 체류자’로 강제출국 당했기 때문에 민국이는 아빠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경기 안산시에 사는 한별이(5·가명)도 엄마는 한국인이지만 아빠는 파키스탄인이다.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한 가정이라 민국이와는 사정이 다르지만 여느 아이들과 다른 외모 때문에 가슴앓이 하기는 마찬가지.
엄마 하모씨(29)는 “아직은 어려서 큰 문제는 없지만 자랄수록 아이의 정체성이 흔들릴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30만명선까지 늘면서 이처럼 한국인과 동남아시아인 사이에서 태어난 ‘코시안’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에 대한 교육문제 등이 잠재적인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대책이 미흡해 본인들은 물론 가족 전체가 고통을 겪고 있다.
▽코시안의 실태〓‘코시안’은 1997년경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들이 처음 사용한 말로 한국인(KOREAN)과 아시아인(ASIAN)의 2세를 가리키는 합성어. 특히 한국인과 동남아시아인 사이의 자녀를 일컫는다.
관련된 정부 통계는 없지만 시민단체들은 현재 국내 코시안의 수가 최소한 5000∼1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경기 안산 시흥 부천, 인천 남동공단 주변 등 외국인 근로자가 몰리는 지역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치는 혼인신고를 한 가정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드러나지 않은 코시안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 이주노동자인권센터 양혜우 소장(36·여)은 “1998년부터는 부모 한쪽이 한국인이면 아이는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다”며 “코시안 아이들이 한국인으로 등록되기 때문에 통계자료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시안 가정의 문제점〓가장 큰 고통은 무엇보다도 자녀들이 ‘흔들리는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1999년까지만 해도 불법체류한 외국인 노동자는 ‘강제출국’ 대상이었다. 2000년부터는 본국과 한국에 혼인신고를 하면 영주권 개념의 F2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고 올 5월부터는 동남아인도 한국 내 취업이 가능해졌지만 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국내 취업은 가능해졌으나 임금이나 직종 선택의 폭이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점도 어려움으로 꼽힌다. 최근 들어서는 국내에서 가정을 이루며 자녀를 낳아 키우던 이들이 이혼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대책은 없나〓2000년 이후부터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노동자의 국내 거주나 취업 제한은 크게 완화됐다. 그러나 이들의 취업과 생활 고충을 수렴하거나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는 전무한 실정이다.
1997년 경기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에 생겨난 ‘코시안의 집’ 등 시민단체들 외에는 터놓고 상담할 수 있는 공간도 없다.
코시안의 집 김영임 원장은 “코시안 가정이 한국 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박승철기자 parkk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