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오른쪽)이 수경스님과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권주훈기자]
“자연은 우리가 한때 맡아서 관리할 뿐 우리 것이 아닙니다. 자연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차단하면 당장 얻는 경제적인 이익보다 훨씬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해 온 법정(法頂·70) 스님이 15일 오후 경기 양주군 장흥면 울대리에 있는 북한산 관통도로 건설반대 농성 현장을 찾았다.
스님은 강원 정선군에 있는 오두막에 머물면서 손수 땔감을 구해 불을 지피고 밭을 일구면서 수행과 청빈의 삶을 살아왔다. 회주(會主)를 맡고 있는 서울 성북동 길상사 법회를 위해 2개월에 한 번씩 서울을 방문하는 것을 빼면 스님의 서울 나들이는 드물다. 그동안 특유의 필치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우리 현실과 사회에 대해 걱정해 온 스님이 이처럼 ‘농성 현장’을 직접 찾아가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
법정 스님은 농성장에 들어서자 한쪽에 마련된 ‘철마선원(鐵磨禪院)’을 찾아 기도한 뒤 “우리는 자연을 지켜 후손에게 물려줄 의무만 있지 파괴할 권리는 없다”며 “북한산을 관통하는 굴이 뚫리지 않고 멀리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농성장을 지켜온 ‘불교환경연대’ 대표 수경(收耕) 스님은 “관통도로 건설은 수도권 시민의 허파를 찢는 사회적인 문제”라며 “지난달 길상사를 찾아 법정 스님께 지혜와 힘을 빌려달라고 간곡히 말씀드렸는데 이처럼 직접 찾아와 주시니 백만 원군을 얻은 듯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서울로 올라온 법정 스님은 “도로는 사람을 위한 도로가 되는 게 도리”라며 “도로를 위해 환경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스님은 또 농성에 참여 중인 망월사 비구니들과 신자 20여명에게 “기도하면 우주의 기(氣)가 반응합니다. 열심히 기도하면 자연을 살리려는 우리의 소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짧은 법문을 하기도 했다.
북한산을 관통하는 서울외곽순환도로 건설을 둘러싸고 불교계를 포함한 시민 환경 단체는 지난해 11월부터 건설교통부 시공업체 등과 팽팽하게 대립해 왔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