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지구촌 경제,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세계화 시대가 발전과 풍요를 약속하는 ‘기회의 시대’가 될 것인가, 아니면 불황과 전쟁을 가져오는 ‘위기의 시대’가 될 것인가. 인류는 지금 그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이와 관련해 세계화를 위기가 아니라 기회로, 실패가 아니라 성공으로 만들기 위해 특히 유의해야 할 두 가지 국가 정책과제가 있다.
첫째는 국제 자본시장으로부터 오는 불확실성과 충격을 최소화하는 일이다. 오늘날 세계자본주의의 최대의 위험은 국제 자본시장의 거대화,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의 급격한 증대에 있다. 오늘날 전 세계의 외환거래량은 하루에 미화로 약 2조달러 정도의 초거대 규모로 커졌다. 이 중 무역이나 직접투자 등 실물거래를 위한 외환거래는 전체 규모의 50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모두가 환율이나 주가 변동의 단기차익을 노린 투기성 높은 자본이동이다. 더구나 하루 외환거래량 2조달러 중 약 40%가 이틀 사이에 거래 방향을 바꾸는 초단기 자본이동이다.
▼국제자본 불확실성 대책 절실▼
개별 국가가 실물면에서 아무리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 노력을 열심히 한다 해도 급격한 국제 자본이동의 태풍을 만나면 개별 국민경제는 하루아침에 난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보아도 1975년부터 1997년 사이에 세계적으로 158개의 외환위기와 54개의 금융위기가 있었고, 외환과 금융위기가 함께 나타난 경우도 32회 있었다. 더구나 위기가 갈수록 대형화하고 보다 빈번해지고 있다.
우리가 경험한 1997년 위기도 결코 우리 잘못만이 아니라 이러한 세계 자본시장의 구조 변화와의 깊은 관련 속에서 나타난 현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우리 경제는 97년 위기 이후 자의반 타의반으로 세계 자본시장에 더욱 깊숙이 흡수 통합되어 왔다.
세계 자본시장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줄이려면 물론 개별 국가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안된다.
IMF개혁을 포함한 국제통화관리체제의 개혁, 아시아통화기금(AMF) 설치 등 지역적 차원의 협력, 그리고 투기자본 이동에 대한 규제 등 개별 국가 차원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런 방향으로 노력하기 위해선 우선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정확하고 과학적인 인식이 필요한데 이 점이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부족하다.
둘째는 세계화에 따르는 경제적 불평등 구조의 심화에 대해 적극 대처하는 일이다. 세계화는 인류의 부와 풍요를 증대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으나 동시에 실업과 빈곤의 증대, 부와 소득분배의 악화 등을 수반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세계 최고 부자 200명의 자산의 합계가 인류 빈곤층 20억명(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의 연간소득 합계보다 큰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유례없는 지속적 호황을 누린 미국에서도 최하위 20% 가구의 실질소득은 지난 25년간 약 15% 감소하였다.
초고속 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에도 하루에 1달러 이하로 생활하고 있는 절대 빈곤인구가 아직 1억명이나 된다. 요컨대 세계화는 분명히 세계적 규모의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개별 국가 내의 불평등 구조도 심화시키고 있다.
▼부의 불평등 줄일 안전망 필요▼
세계화가 아무리 세계적 부의 창출에 크게 기여한다 해도 증대하는 불평등 구조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세계화는 결국 좌초하고 실패할 것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있었던 세계화 물결이 1920년대 세계공황과 제1차 및 제2차 세계대전으로 실패한 역사적 사례를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이 심화되는 불평등 구조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가 세계화시대에 모든 나라들이 당면한 중요 국가적 과제의 하나다.
요즈음 세계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하기 편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우리나라가 ‘동북아시아 물류 중심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백 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국제 자본시장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줄여 나갈 금융안정망(financial safety net)과 심화되는 불평등 구조를 개선해나갈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을 올바로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좋은 세계화 전략도 이 두 가지 과제를 포함하지 않으면 실패할 위험이 크다. 이 사실을 정부도 국민도 모두 명심해야 한다.
박세일 서울대 교수·법경제학